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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프로당구협회(PBA)

[스포츠서울 | 고양=김용일기자] “운명처럼 만난 당구, 아버지도 10년 만에 만났죠.”

4일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에 마련된 PBA팀리그 특설경기장에서 만난 최혜미(27·휴온스)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이날 끝난 크라운 해태와 팀리그 4라운드 마지막 날 하비에르 팔라존(스페인)과 혼합복식에 나선 그는 김재근, 백민주가 짝을 이룬 크라운 해태에 졌다. 팀도 세트스코어 2-4로 역전패했는데,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다”며 속상해했다. 강한 승리욕을 느낄 수 있었다.

최혜미는 올 시즌 여자 프로당구 LPBA ‘대세’로 꼽힌다. 지난 두 시즌 동안 두 차례 16강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일 정도로 매번 서바이벌(64강~32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올 시즌엔 180도 다른 행보. 지난 6월 LPBA 1차 대회 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 8강에 오르더니, 9월 2차 대회 TS샴푸 챔피언십에서 4강 고지를 밟았다. 팀리그 후기리그를 앞두고는 2차 드래프트에서 휴온스의 지명을 받았고, 이번 4라운드 첫날 데뷔전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최혜미
제공 | 프로당구협회(PBA)

옆돌려치기를 주특기로 삼는 최혜미는 올 시즌 다양하고 섬세한 구질로 한 차원 거듭났다.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당구장에서 일하면서 고점자와 자주 경기를 했다. 평균 에버리지가 0.8이 넘었다”며 “어느 때보다 여러 구질을 익혔다. 또 공이 잘 맞을 때, 잘 보일 때 생각을 스스로 정립하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적중한 거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은 멀단다. 최혜미는 “확실히 프로는 집중력과 경기 기운이 다르다. 난 동호인 대회를 뛰다가 프로에 바로 온 케이스여서 여전히 낯설다. 더욱더 분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물한 살 때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큐를 잡은 최혜미는 동호인 대회에서 몇 차례 우승하며 재능을 보였다. 그러다가 LPBA 원년 오픈챌린지에 참가, 6위 안에 들면서 프로로 전업했다.

기적 같은 삶의 반전이다. 본래 운동에 소질은 있었단다. 그는 중학교 2학년 시절 체육대회에서 씨름하다가 유도부 감독 눈에 들어 도복을 입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할 정도로 운동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도자의 구타 등에 상처를 입고 운동을 그만뒀다. 이후 진로를 두고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스무살 성인이 돼서 화장품 영업을 하는 등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오래 이어가지 못했고 우연히 친구 권유로 1년 뒤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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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미(LP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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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미는 “처음엔 공 칠 생각은 없었고 순수 당구장 일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당시 코리아 당구왕대회에서 김세연(LPBA 소속) 선수가 경기하는 것을 봤다. ‘아 여자도 당구 하는구나’라며 ‘나도 운동을 좋아했으니까 한 번 해볼까’ 싶더라”고 웃었다. 충남 천안시 소재 당구장에서 일하는 그는 함께 근무하는 최완영으로부터 여러 지도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완영 오빠께서 ‘너는 겁 없이 치는 게 장점’이라며 ‘웬만한 여자 선수는 수비적으로 치는 데 공격적’이라더라. 자신감을 느꼈고 정신적 지주 구실을 해줬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프로 생활로 10년간 떨어져 지낸 아버지도 만났다고 밝혔다. 최혜미는 그가 초등학생 시절 부모가 이혼했다.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고등학교 시절 이후 10년여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최혜미의 어머니와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건넸다. 그러다가 프로 당구 선수가 된 딸의 활약을 TV 등을 통해 접했다. 최혜미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연락해서 제 경기 등을 물으셨더라. 그러다가 지난달 셋째 오빠 결혼식에서 10년 만에 만났다”며 “처음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나더라. 아버지가 ‘잘 커 줘서 고맙다’고 하셨다”고 했다.

최혜미는 그래서 당구가 더욱더 고맙고 소중하다. 그는 “이기든, 지든 즐기면서 당구 하고 싶다. 많은 분께 좋은 메시지를 남기는 프로가 되겠다”고 웃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