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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정다워기자] 코스프레. 대한축구협회가 밀실 행정을 위해 벌인 일이다.
협회는 27일 독일 출신의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A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해 발표했다.
여론은 부정적이다. 내리막길을 걸은 커리어, 독일 선수들이 지도 스타일을 부정적으로 언급한 과거 등이 회자되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걱정대로 실패할 수도 있지만 우려를 극복하고 성공의 길을 갈 가능성도 충분하다.
협회의 문제는 클린스만 감독 선임 그 자체가 아니라 선임 방식에 있다.
협회는 지난달 20일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으로 총 6명을 선임했다. 하나 같이 프로, 대학 무대 현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로 일부는 바쁜 일정 탓에 위원직을 고사했지만 협회의 설득으로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는 애써 ‘모신’ 위원들을 들러리로 만들었다. 이번 인사를 주도한 토마스 뮐러 전력강화위원장과 황보관 기술본부장은 위원들에게 후보 면면, 협상 과정 등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클린스만 감독 선임 소식을 발표 당일에 통보한 후 30분 후 세상에 알렸다. 이번 인사에 위원들의 의견과 생각은 반영되지 않았다. 어떤 감독이 필요한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등 중요한 논의는 아예 이뤄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부 위원은 협회의 행태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위원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위원회는 사실상 마비된 상태인데 협회는 위원회를 운영하는 ‘코스프레’를 한 셈이다.
협회 수뇌부를 보는 축구계 시선은 싸늘하다. 위원회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위원들은 사실상 본인들을 들러리라 생각하고 있다”라며 “할 일 많은 사람들을 위원으로 영입하고 저렇게 행동하는 게 상식적인 일인가 싶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축구인도 “애초에 협회는 위원들과 긴밀하게 협의해 후보를 정할 의지가 없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정몽규 협회 회장을 비롯한 일부 고위 관계자들만의 의견으로 인사를 단행할 생각 아니었나. 그럼에도 바쁜 위원들은 영입해 시스템을 잘 유지하는 코스프레를 한 것과 다름이 없다. 부정적인 여론의 방패막이로 위원들을 이용한 모양새다. 처음부터 극도로 제한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언질을 줬다면 저렇게 부정적으로 반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협회는 이미 소수의 감과 생각을 바탕으로 감독을 선임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직접적으로 경험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고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해 시행착오를 줄이는 쪽으로 선회했다. 그런데 협회는 무엇이 더 합리적인 방식인지 알면서도 더 원시적이고 리스크가 큰 방향으로 유턴을 했다. 도대체 어떤 철학과 방향성으로 한국 축구를 이끄는 조직인지 알 수가 없다.
정 회장은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 위원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밑으로 봤던 동남아 국가들에게도 밀리는 외교 참사를 겪으며 대한축구협회라는 조직을 이끌 리더가 되기에 부족하다는 축구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정 회장을 보좌하는 수뇌부의 능력도 지속적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번 선임 과정을 통해 정 회장과 수뇌부는 다시 한 번 축구계의 민심을 잃었다. 이는 클린스만 감독의 성공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졸속 행정이 결과에 따라 정당화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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