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항저우=김동영기자] “사과하라.”
한국과 북한의 여자농구가 아시안게임에서 붙었다. 결과는 한국의 승리. 1쿼터만 힘들었을 뿐, 2쿼터부터 북한을 압도했다. 그리고 경기 후 묘한 일이 발생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계자의 급발진이 터졌다.
한국은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 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C조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 북한전에서 박지수-강이슬-김단비 등의 활약을 통해 81-62의 대승을 거뒀다.

1쿼터는 만만치 않았다. 어수선한 모습이었고, 공수 모두 길을 잃었다. 2쿼터부터 살아났다. 박지수가 골밑을 장악했고, 외곽 3점포까지 쐈다. 강이슬의 3점슛도 불을 뿜었고, 김단비는 안팎을 오가며 팀을 이끌었다. 박지현의 리딩도 돋보였다. 조화가 잘 이뤄졌고, 결과는 대승이다.
북한에서 100여명 응원단이 왔고, 현장 관중들도 일방적으로 북한을 응원했다. 북한이 잘할 때는 환호와 함성으로 가득 찼다. 한국이 역전에 성공한 후 달아나자 조용함을 넘어 고요함까지 느껴질 정도가 됐다.
상대 쪽에서도 눈에 확 띈 선수가 있다. 신장 205㎝의 박진아다. 신장과 파워를 앞세워 한국 골밑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보였다. 이날 박진아는 29점 17리바운드를 폭발시켰다.

경기 후 정선민 감독에게 박진아의 플레이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저런 선수가 한국에 없는 것이 아쉽다. 우리 선수였다면, 만리장성(중국)도 넘을 수 있을 텐데”라고 답했다.
박지수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좋은 선수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강한 인상을 받았다. 신장의 우위를 살릴 줄 알았다. 파워도 갖췄다. 2003년생으로 아직 어린 선수다. 갈수록 좋아질 여지가 있다.

이렇게 한국은 상대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은 살짝 결이 달랐다. 괜한 부분에서 시비를 건 모양새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외신 기자가 북한 정성심 감독에게 물었다. ‘5년 전에는 단일팀으로 뛰었는데 이번에는 상대편으로 붙었다. 소감은 어떤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정성심 감독 옆에 앉아있던 한 남성이 마이크를 받았다. 관계자로 보였다. “그것은 내가 대신해서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말한 뒤 “그 부분은 이번 경기하고 관련이 없다고 봅니다”고 선을 그었다. 껄끄러우니 대놓고 답을 피했다.

이후 국내 기자가 ‘북한 응원단이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줬다.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국제대회 오랜만에 왔는데 음식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도 궁금하다’고 물었다.
질문은 감독과 선수에게 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 관계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갑자기 영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노스 코리아(North Korea)가 아니다. 모든 나라들이 ‘DPRK(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이어 “잘못된 일이다. 사과해야 한다. 아시안게임에서는 모든 국가명을 정확하게 불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갑자기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고, 당연히 질문에 대한 답도 나오지 않았다. 현장 취재진은 당황함을 넘어 헛웃음까지 나왔다.

‘북한’이라는 표현에 불쾌함을 표한 것이다. 영어가 아닌 북한말로 했다면 “북한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불러야 한다” 정도 되겠다.
감독과 선수에게 물었는데, 애먼 사람이 화를 낸 모양새다. 크게 패한 후 꼬투리를 잡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과거부터 ‘북한’이라는 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북측’이라 표현하면 문제 삼지 않는다. 물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하면 흠잡을 곳이 없어진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북한도 한국을 한국이라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대한민국’이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부르는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남조선’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고 봐야 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거슬린다면 거슬릴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구하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북한 선수들도 철저히 한국 선수들을 외면했다. 5년 전 단일팀으로 뛰었던 로숙영과 김혜연이 이번에도 왔다. 그러나 투명 인간 대하듯 한 모양새다.
박지수는 “5년 전에 자카르타에서는 단일팀으로 같이 뛰었다. 5년 만에 다시 만나서 반가울 줄 알았는데 따로 인사도 못했다”고 말했다.
강이슬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같아 속상하더라. 눈을 안 마주치고, 마지막에 하이파이브도 안 하더라. 불러도 쳐다보지 않았다. 경기 중 넘어졌을 때 잡아주는 것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raining99@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