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배우 이이경이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현실 빌런’ 연기로 사랑받고 있다.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여자 친구에게 빌붙다 못해 처절하게 배신하는 박민환 역을 맡은 이이경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인간 말종 캐릭터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으로 극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있다.

박만환은 여자 친구의 절친과 바람피는 것은 물론 틈만 나면 가스라이팅 화법을 구사하고, 온갖 거짓말을 일삼아 돈까지 뜯어낸다. 급기야 주식으로 모든 돈을 잃은 뒤 프러포즈까지 하는 만행까지 저지른다.

여자친구인 강지원(박민영 분)에게 “너 같은 여자는 나나 챙겨주지 남자들은 싫어해”라고 말하거나, 강지원의 절친 정수민(송하윤 분)과 뜨거운 밤을 보내고 “넌 남자친구가 밖에서 자는지 관심도 없고”라며 혀를 끌끌 차는 등 철면피 같은 모습을 보여줌에도 죄책감은 조금도 없다.

친구에게 정수민과 하룻밤을 과시하는 등 인간으로서 부족한 면모가 많다. 오죽하면 ‘쓰레기 남편’이라는 수식어가 찰떡처럼 붙었다. 여성 시청자는 물론 남성 시청자들도 뒷목을 잡을 만한 못난 인간이지만, 이이경이 가볍고 유쾌하게 연기하는 덕에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무겁지 않은 톤으로 펼쳐진다.

이이경 소속사 상영이엔티 박형준 대표는 “이이경은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진중하고 머리가 좋아서 분석력이 좋다. 예능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필모그래피도 잘 쌓은 편”이라며 “다년간 작품하면서 얻은 경험이 ‘내남결’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환이 고통 받을 때마다 시청자들의 가슴이 뻥 뚫리는 건 그만큼 이이경이 얄미운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빼어난 연기력 때문에 시청자 사이에서는 작품이 너무 많이 들어와 안정적인 예능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이경의 연기력은 예능에서 빛나는 활약 때문에 가려져 있었다. SBS PLUS, ENA ‘나는 SOLO’, MBC ‘놀면 뭐하니?’를 비롯해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의 동물적인 순발력이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순간적인 기지를 필요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이경은 재치 넘치는 화법으로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이끌어냈다.

예능에서 이름이 더 많이 알려진 듯 보이지만, 연기력 또한 이미 정평이 난 배우다.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2018~2019)를 비롯해 영화 ‘육사오’(2022)와 같은 작품에선 코믹 연기가 발군이었다. 과장된 표정이나 액션을 하지 않고도 기억에 오래 남을 웃음을 이끌어 냈다. 영화 ‘괴물들’(2018)과 MBC ‘검법남녀’(2018)과 같은 작품의 정극 연기도 훌륭히 표현했다.

예능과 각종 작품에서 쌓인 경험이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빛을 봤다. 주식에 모든 돈을 잃고 막바지에 몰린 박민환이 남은 4회차 동안 어떻게 무너질지 주목된다. 이이경의 맹활약에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8회만에 10%(닐슨 코리아 케이블 기준)를 넘겼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역할을 이이경이 재치 있게 풀어서 극의 분위기가 밝은 편”이라며 “‘코믹 연기 하면 이이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로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만 이러한 패턴이 지속되면, 코믹 이미지가 너무 굳혀질 수 있다. 배우로서는 큰 숙제를 떠안게 된다. 작품 선택을 영리하게 해서 스펙트럼을 넓혀나가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좋은 포지션을 가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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