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 기자] 가수 윤도현은 지난 달 28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소극장에 도착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왈칵 쏟았다.

학전블루소극장은 파주, 고양 일대에서 활동했던 무명의 가수지망생 윤도현에게 ‘중앙무대’ 진출 역할을 하는 ‘꿈의 무대’였다.

그는 이곳에서 열렸던 여행스케치 콘서트의 게스트로 데뷔했다. 당시 신드롬급 인기를 누렸던 김광석의 무대에도 섰다. 최고 인기가수답게 김광석의 대기실에는 당시만 해도 쉽게 접할 수 없던 KFC 치킨이 마련돼 있었다.

윤도현은 28일 학전블루소극장에서 열린 ‘학전어게인’ 무대에서 이같은 에피소드를 전하며 “이곳에만 오면 그때 생각이 난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본공연 전 리허설을 마친 뒤 실제로 KFC 앞에서 사진을 찍고 치킨을 먹었다고 자신의 SNS에 사진을 게시하기도 했다.

학전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학전출신 가수들과 배우들이 모인 ‘학전, 어게인’ 공연이 지난 달 28일, 14일 여정의 닻을 올렸다. 1991년 3월 15일 개관한 학전은 창립 33돌인 2024년 3월 15일 문을 닫는다. 지속적인 재정난과 더불어 김민기 대표의 건강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

이 소식을 접한 학전 출신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추진한 공연이 ‘학전, 어게인’ 공연이다. 1991년 3월 15일, 학전 소극장 개관공연을 함께 했던 여행스케치와, 그 여행스케치 콘서트의 게스트로 데뷔한 윤도현이 릴레이공연 첫 주자로 나서 의미를 더했다.

여행스케치가 포문을 열었다. 익숙한 풀벌레 소리와 함께 “어제는 별이 졌다네”라는 ‘별이 진다네’의 첫 소절이 시작되자 객석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옛 친구에게’, ‘겨울이 오면’, ‘난치병’ 등 그때 그 시절 학전에서 불렀던 히트곡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여행스케치의 루카(조병석)와 남준봉은 “처음 학전무대에 섰을 때는 객석이 없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면 방석에 앉는 시스템”이라며 “앉을 자리가 없으면 미닫이문을 떼기도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당시 (김)광석이 형과 우리가 공연의 보증수표였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학전 초창기 멤버답게 1열 관객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만담을 가지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운명’ 무대에는 여행스케치 7~9집에 참여했던 이수정 게스트로 나섰다. 이수정은 ‘70년대 한국 포크 음악에 대한 연구 : 양희은과 김민기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수정은 “김민기 선생님은 학술적으로 조명하기에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루카는 “학전은 배울 학(學)에 밭 전(田)을 쓴다. 선생님께서는 늘 판은 내가 깔테니 새내기들이 모여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하셨다”며 “현재 선생님의 건강이 좋지않다. 쾌유를 바란다. ‘학전 어게인’이 아닌 ‘학전 포에버’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여행스케치가 웃음을 안겼다면 윤도현은 추억으로 눈물짓게 만들었다. 대한민국 대표 밴드 YB의 보컬이지만 이날만큼은 ‘빗소리’, ‘당신이 만든 날씨’, ‘박하사탕’ 등 어쿠스틱한 선곡으로 귀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소극장 콘서트 무대에 선 윤도현은 사뭇 떨림을 감추지 못했다.

윤도현에게 학전은 마음의 고향이다. 그는 이곳에서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다. 그의 첫 뮤지컬 무대는 학전에서 김민기가 연출한 ‘개똥이’다. 뮤지컬 배우 출신 아내도 학전에서 만났다.

결국 윤도현은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컥했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선곡한 앵콜무대였다. 희소암을 극복하고 다시 무대에 섰던 그가 자신의 뿌리인 학전 무대에 선 마음이 어떨지 감히 짐작조차 어려웠다.

YB멤버들은 윤도현에게 힘을 보탰다. 기타리스트 허준이 함께 했고 베이시스트 박태희는 ‘나는 나비’ 무대에 게스트로 등장했다. 박태희는 “학전이 있기에 YB의 ‘노래하는 윤도현’이 있었다. 이곳에서 그가 선후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기에 지금의 윤도현과 YB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도현은 공연을 마친 뒤 ‘스포츠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김민기 선생님은 내게 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늘 응원과 애정을 보내주셨다. 데뷔한 뒤에도 매번 선생님의 마음을 느꼈다”고 존경의 마음을 드러냈다.

2시간 30분 남짓한 공연이 끝났지만 가수도, 관객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관객들은 학전 앞 김광석 동상 앞에서 삼삼오오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박제했다. YB의 팬이라는 조미현(32)씨와 류수민(27) 씨는 “예전에도 공연을 보러 왔던 유서깊은 공간이 사라진다니 아쉬움이 크다”고 안타까워했다. 학전은 사라지지만 이곳에서의 기억만은 관객들의 마음속 추억으로 또렷이 남을 전망이다. mulga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