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울산=김용일 기자]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울산HD가 전북 현대를 제치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4강에 진출한 12일 울산문수경기장. 관중석에 이런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만 33세 333일, 역대 최고령 축구국가대표 A대표팀에 승선한 울산 스트라이커 주민규를 축하하는 팬의 마음이다.
‘만추가경 (晩秋佳景)’의 정석이다. 지난 세 시즌 간 리그에서만 56골을 터뜨리고 두 번(2021, 2023)이나 득점왕에 오른 주민규는 이상하리만큼 태극마크와 연이 없었다. 지난 5년간 A대표팀을 이끈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위르겐 클린스만(독일)처럼 외인 사령탑은 ‘토종 득점왕’을 외면했다. 그 대신 폼이 고르지 않은 유럽파 공격수를 고집스럽게 선호했다.
그런 그가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어간 리빙레전드 황선홍 감독이 A대표팀 임시 지휘봉을 잡으면서 전격적으로 낙점받았다. 오는 21일(서울)과 26일(방콕) 태국과 치르는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2연전에 나설 국가대표팀 23인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간 태극마크와 관련해 상처투성이였던 그는 대표팀에 발탁된 날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 전북과 ACL 8강 2차전 전날에 명단이 발표됐는데, 혹여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돼 팀 분위기가 흐트러질까 봐 우려했다. 수많은 언론 인터뷰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대표팀에서 신인이나, 베테랑다운 품격 있는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 주민규는 전북전에 선발 출격해 팀의 1-0 신승을 이끌었다. 울산은 1,2차전 합계 2-1 우위를 보이면서 4강에 진격했다.
경기 직후 주민규는 마침내 취재진 앞에 섰다. 그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얼마나 태극마크가 간절했는지 느끼게 했다. “굉장히 오래 걸렸다”고 입을 연 주민규는 “그동안 상처도 많이 받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는데 끝까지 하다 보니 열매가 맺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이나 상처받았을 가족 얘기에 “아내가 ‘고령 오빠’라고 놀리더라”며 웃었다. 아내 뿐 아니라 부모도 그의 대표팀 발탁 소식에 크게 감격해했다.
주민규는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더 젊을 때 대표팀에 들어갔다면 좋았겠지만 내가 부족했다고 본다. 이 나이에 들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그의 발탁 배경을 두고 “3년간 리그에서 50골 이상 넣은 선수가 전무하다. 더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며 강한 신뢰를 보였다. 주민규는 이에 대해 “그동안 ‘현타’가 오기도 하고 실망도 많이 했다. 감독의 말씀을 기사로 봤는데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 포기하지 않으니 꿈이 이뤄지더라. 다른 선수도 희망을 품었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월드클래스 공격수’ 손흥민(토트넘)과 만남도 기대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다.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하면서 장점을 배워볼 생각”이라고 했다. 또 명스트라이커 출신 황 감독과 만남에 대해서도 “(현역 시절) 어떻게 많은 골을 넣었는지, 스킬이나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