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박)지성이형에게 먹고, 자는 것까지 배웠다.”
축국대표팀 주장 손흥민(32·토트넘 홋스퍼)은 만 18세였던 2010년12월 A매치 데뷔했다. 당시 대표팀 캡틴은 한국 축구의 유럽파 시대를 연 박지성 현 전북 현대 테크니컬 디렉터였다. 박 디렉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당대 최고의 클럽에서 활약한 권위 있는 리더였다. 실력과 인성,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본보기가 되는 선배였다.
독일에서 막 프로 생활을 시작하던 손흥민에게 박지성은 일종의 ‘교본’ 같은 존재였다. 10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흥민은 “지성이형과 함께한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며 “생활하는 것을 배웠다. 먹는 것, 자는 것까지 보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시간이 흘렀고, 30대로 접어든 손흥민은 박지성이 하던 역할을 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지금의 손흥민도 과거의 박지성처럼 확실한 권위를 갖춘 리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인정받는 것을 넘어 득점왕까지 차지한 커리어는 손흥민이 범접할 수 없는 캡틴이 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박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손흥민은 이제 후배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조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스스로 “나도 내가 이 자리까지 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시간이 올 줄 몰랐다”라며 “지성이형이나 (이)영표형이 하던 역할을 하게 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다. 내 경험을 토대로 좋은 조언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후배들도 잘 받아들여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손흥민이 최근 특히 신경 쓰는 후배는 배준호(21·스토크 시티)다. 지난해 여름 만 20세에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에 진출한 배준호는 데뷔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구단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다. 뛰어난 기량으로 팀 공격을 이끌며 험난한 잉글랜드 무대에 안착했다. 지난 6일 싱가포르전에서는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2003년생으로 아직 어린 나이지만 배준호를 향한 기대감은 고조되고 있다. 1981년생인 박 디렉터, 1992년생인 손흥민의 나이로 인해 한국 축구 에이스 ‘11년 주기설’까지 나올 정도다. 2001년생인 이강인(파리생제르맹)과 함께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진입도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머지않은 미래에 손흥민과 같은 무대에서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순식간에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배준호를 손흥민은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손흥민은 “준호는 앞으로도 계속 많은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 막내인데 정말 잘 성장하고 있다. 많은 팬, 언론에서도 기대하는 것을 안다”라면서도 “하지만 조금은 걱정된다. 어린 선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안 좋은 상황에 놓이는 것을 세계적으로 많이 봤다”라며 우려했다. 너무 이른 시기에 과도한 관심을 받다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어 걱정하는 셈이다.
과거에도 손흥민은 이강인에 관해 비슷한 얘기를 했다. 과도한 기대와 관심이 선수 발전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의견이다. 그는 “전부터 강인이 얘기도 많이 했다. 성장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준호도 마찬가지다. 많은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옆에 있는 사람, 주변 환경이 도와줘야 한다. 우리는 다 같은 편이다.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만큼 잘 만들어주면 좋겠다”며 선수의 성장을 위해 과도한 관심이나 기대보다는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