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필터 버블’(인터넷 정보제공자가 맞춤형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해 이용자는 필터링 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현상)은 온라인에서 자기 의견에 부합하는 경험만 받아들이며 반대되는 주장은 거부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소통을 하면 충분히 해소될 수 있는 갈등이 오히려 온라인에서 더욱 심화됐다.

카카오 권성민PD는 “대수롭지 않은 사안으로 생긴 갈등을 풀 방법이 뭘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답이 웨이브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하 ‘더 커뮤니티’)다.

13명의 각기 다른 성향의 출연자를 한 구역에 모아놓고 정치와 페미니즘, 부의 격차, 개방성을 주제로 충돌하는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불안을 조성하는 ‘불순분자’를 설정했다. 입소문을 탄 ‘더 커뮤니티’는 웨이브 신규가입기여도 1위 프로그램으로 올라섰다.

권성민 PD는 “온라인에선 너무 심각하게 서로를 혐오하고 싸우고 있다. 반대로 오프라인에선 그렇게까지 치열하지 않다. 소통을 통해 우리가 가진 갈등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전했다.

정치를 주제로 만든 예능인만큼 각 거대정당 소속 정치인이 출연하고,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는 직업인들이 등장했다. 각자 개성이 뚜렷한 13명이 나와 심리 서바이벌을 벌였다. 모든 캐릭터가 자기만의 색을 냈다.

“먼저 성비를 맞춰야 했어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면 일단 성비에서 편이 갈리더라고요. 정치나, 부는 점점 대화를 통해 알아가는 거지만, 성별은 즉각적으로 알잖아요. 그리고 네 가지 분류표를 칠판에 그려놓고 한 명씩 붙였죠. 다들 성격 좋은 분들이어서 더 솔직한 예능이 탄생한 것 같아요.”

불순분자의 존재는 이 프로그램의 키포인트다. 불순분자는 권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다른 출연자들이 더 오래 살아남고 돈을 많이 벌수록 이득을 얻는 존재다. 서로 분란을 조장하는 듯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아무도 죽이지 않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불순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는 다른 출연자들은 이유없이 불안을 느낀다.

“불순분자는 현실에 존재할 수 있어요. 어떤 집단에서 혼자 사상이 다른 사람도 불순분자일 수 있죠. 잘 포용하면 조직에 큰 도움이 되는 존재죠. 임현서 변호사가 이 역할을 맡았는데, 채널A ‘굿 피플’을 보고 섭외를 했어요. 생각부터 방송 감각까지 정말 뛰어나요. 개인적으론 정말 완벽한 불순분자가 되준 임 변호사에게 감사하죠.”

‘더 커뮤니티’가 가장 화제를 모은 대목은 백곰 박성민과 슈퍼맨 김재섭의 토론이다. 종신 리더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후보자로 나온 두 사람의 토론은 소통이 되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었다. 진보적인 세계관과 보수적인 세계관의 맞수는 같은 사안에 같은 목적을 갖고 있더라도 얼마나 다른 사고 과정을 거쳐 다른 방법을 제시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총 촬영이 8박9일이었는데, 그 토론은 6일차였어요. 스태프들이 그 전까지는 이 프로그램이 뭔지 전혀 감을 못 잡았어요. 왜냐하면 채팅으로 나오는 대화는 스태프들이 못 봤으니까요. 토론을 보고 사람들이 웅성웅성 했어요. ‘와! 재밌다’라고요. 정치는 선거와 정당을 의미하지만, 사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갈등을 조율하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그 정치를 두 가지 세계관 내에서 처리하는 게 전 세계적인 흐름이죠. 그 차이를 한 눈에 보여줬다는 거에 뿌듯함이 있어요.”

두 사람의 토론은 놀랍게도 11:2 백곰의 압승으로 끝났다. 두 사람의 토론이 매우 치열했던 것과 달리 결과는 매우 편향적이었다. 슈퍼맨은 이 결과로 인해 큰 데미지를 입었다.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백곰을, 성장을 원하거나 스스로 내가 강자라고 느끼는 사람은 슈퍼맨을 선택했을 거예요. 사회에서 강자 축에 속하더라도 양보를 하고자 한다면 선택이 달라질 수 있죠. 제가 관찰하면서 느낀 건, 출연자들이 더 많은 성과보다 쫓겨나지 않고 싶은 욕구가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백곰이 승리한 게 아닌가 싶어요.”

권성민 PD는 시즌2를 고심하고 있다. 워낙 세밀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이라서 변주가 쉽지 않을 수도 있고, 그리 많은 미션이 있었던 편도 아니라서 시즌1 그대로 설정을 가져간다면 예측성이 높아져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시즌2가 된다면 ‘무지의 장막’을 더 활용할 것 같아요. 정치학에서 중요한 개념인데요. 인간이라면 내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인지 알게 되죠. 그래서 여러 정책에 자기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지지를 하죠. 만약 ‘내가 어떤 입장인지 모른다고 할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많은 게 바뀌어야겠죠. 그래도 재밌게 만들 자신은 있어요. 늘 생각해오던 주제니까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