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부산=함상범 기자]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주인공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故 이선균이었다. BIFF는 22년 동안 숱한 작품에 출연해 여러 얼굴로 깊은 울림을 준 배우에게 헌사를 바쳤다.

비록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만이 꼭 편하지만은 않더라도, 영화제는 진심으로 연기했던 좋은 배우를 고이 보내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축제의 장과 달리 공기는 급격히 무거워졌고, 객석에서 눈물을 훔치는 배우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떨림이 영화제의 품격을 높였고, 적잖은 배우와 관객에게 위로를 줬다.

2일 오후 6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29th BUSAN Internaitonal Film Festival, 이하 29th BIFF) 개막식이 열렸다. 사회는 배우 박보영, 안재홍이 맡았다.

두 사회자가 포문을 연 레드카펫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었다.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보통의 가족’ ‘청설’ ‘침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전, 란’ 등 영화제에 초청받은 작품의 배우들이 반가운 표정으로 입장했다. 강동원, 이정재, 박정민, 송중기 등을 비롯해 노윤서, 권유리, 김민하, 김민선, 심은경 등 국내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대거 참석했다.

레드카펫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 노출로 눈길을 끈 여배우가 종종 있었지만,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차분한 의상으로 통일하며 축제의 품위를 높이고 있다. 올해도 그 분위기는 그대로 이어갔다.

첫 시상은 올해 신설 부문인 까멜리아상이었다. 까멜리아상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샤넬이 함께 영화 산업에서 여성의 지위를 높이고 이들의 문화예술적 기여를 제고하기 위한 부문이다. 수상은 영화 ‘헤어질 결심’ ‘외계+인’ 1부, ‘아가씨’ 등에 참여한 류성희 미술감독에게 돌아갔다.

류성희 감독은 “여성 미술감독이 많지 않았고, 창조적인 장르영화를 만드는 건 남성들의 영역으로 인식됐다”며 “편견을 버리고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 앞에 펼쳐질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말했다.

류성희 감독의 수상이 끝난 뒤 故 이선균의 얼굴이 큰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배경음은 tvN ‘나의 아저씨’ OST ‘어른’이었다. 올해 BIFF에선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난 故 이선균을 기리는 특별기획 프로그램 ‘고운 사람, 이선균’을 개최한다. 이선균의 대표작 6편을 상영하고 스페셜 토크도 함께 진행한다. 특별전에선 그의 연기 인생과 성취를 되돌아 보는 한편, 추모의 장을 마련한다.

더불어 올해의 한국영화공로상(Korea Cinema Award) 수상자로 故 이선균이 선정됐다. 한국영화공로상은 한국영화의 위상을 드높이고, 세계적인 성장에 기여한 영화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고인과 인연이 있었던 배우들은 금세 슬픔에 잠겼다. 송중기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이선균의 추천으로 ‘화차’로 데뷔한 이희준, MBC 드라마 ‘트리플’에서 인연을 맺은 이정재도 깊은 상념에 잠겼다.

영상이 끝나자 박보영은 “너무 안타까운 이별이었다. ‘나의 아저씨’의 마지막 인사처럼 이제는 편안함에 이르셨기를 바란다”는 말을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안재홍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고 이선균 배우를 추모하며 대표작 6편을 상영한다. 선배님을 기억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 한국영화 공로상은 유족에게 잘 전달드리겠다”고 밝혔다.

올해 아시아 영화인상의 주인공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다. ‘큐어’ ‘화로’ 등 수많은 영화인에게 귀감이 될만한 신선한 작품을 다수 연출한 감독이다. 봉준호 감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찬사를 바쳤다.

봉 감독은 “저는 기요시 감독님의 오랜 광팬으로 감독님의 이번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 너무 많다. 매번 충격과 영감을 주셨던 기요시 감독님께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 부산에서 좋은 시간 보내셨으면 좋겠다”고 영상으로 축하를 전했다.

일본의 젊은 거장으로 꼽히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또한 “학생 시절부터 감독님께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고 지금 제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 덕분이다. 감독님께 모든 것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도 무섭고도 웬지 속이 시원해지는 영화를 계속 만들어주시면 좋겠다. 저도 감독님의 뒤를 따라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제가 영화를 찍기 시작한 지 벌써 40년이 됐다. 처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한 것은 20년 전이다. 제 영화 인생의 반을 부산국제영화제가 지켜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개최된다. 올해는 커뮤니티비프 상영작 54편을 포함하여 총 63개국으로부터 온 278편을 만날 수 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