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왜놈들하고 붙어 싸운 백성들은 시체를 뜯어 먹으면서 연명하는디, 왜놈들 하고 붙어먹은 양반들은 갈비를 뜯어가면서 잔치를 벌여 부러야”

지난 1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전, 란’ 속 대사다. 촌마게(사무라이식 상투)를 한 청주 목사를 중심으로 양반들이 고기 잔치를 벌인 것을 본 의병 범동(김신록 분)이 분에 못 이겨 내뱉은 말이다. 결국 청주 목사는 목이 잘렸다.

‘전, 란’은 임진왜란부터 7년간 전쟁시대를 배경으로 픽션을 가미했다. 영화는 ‘누가 진짜 영웅인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부정한 방법으로 권좌를 얻은 양반의 탐욕과, 천인이라는 신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병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운 노비의 분노가 얽힌다. 때문에 이 영화는 대한민국 정치 상황과 맞물린다.

특히 차승원이 연기한 선조의 얼굴은 시대상을 닮았다. 무능이 지나치면 악이되고, 이런 군주의 엇나간 신념은 백성을 피폐하게 한다. 백성의 안위보단 자신의 권세가 더 중요한 위정자. 급기야 백성을 한낱 도구로 대하는 물질주의자의 태도는 소시오패스를 연상케 한다. 선과 덕으로 백성을 보살펴야 하는 상식적인 임금의 태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궁궐 재건에만 힘쓰는 모습을 보다 못한 신하는 “코가 잘린 백성이 어떻게 공역을 감당하냐”고 읍소했고, 선조는 “코로 공역하느냐”며 반문했다. 신하는 눈물로 호소했지만, 왕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딘가 익숙하다. 추석 연휴 기간 동안 119 구급대는 응급실을 찾느라 뺑뺑이를 돌았다. 수십명의 위급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의료대란은 없었다는 공허한 주장만 남았다.

전쟁이 발발하자 함께 피란한 사람들을 불러놓고 ‘축승회’를 열었다. 가신만 챙기는 형태다. 반면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백성은 못본체했다.

경제전문가들은 국내 경제가 파탄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는데 직장인의 수익은 늘지 않았다고 한다. 높아진 원가만큼 손님이 늘지 않아 고생하는 자영업자도 많다. 소상공인은 폐업을 이어가고 있다. 1년 사이 폐업한 점포만 15만이다. 자영업자 수는 20만으로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눈과 귀를 닫은 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2024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전쟁이 발발하자 몽진을 시도한 선조는 백성이 경복궁을 불로 태웠다는 신하의 보고에 “아니 왜?”라고 했다. 민심이반 이유를 되묻는 선조의 표정에 조소(嘲笑)를 낳는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