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24년 만에 돌아온 영화 ‘글래디에이터Ⅱ’는 명성 그대로였다. 크리처물과 미래로 가득 채운 올해 할리우드 영화와 결을 달리한다. 땅을 딛고 일어섰던 2000년 전 로마 제국 이야기다. 새로운 이야기가 있겠냐는 우려도 있었다. 퇴고에만 12년이 걸린 이유가 납득이 갈 정도로 뻔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영화는 막시무스 죽음으로부터 20여 년 후, 콜로세움에서 로마 운명을 걸고 결투를 벌이는 새로운 검투사 루시우스(폴 메스칼 분)와 로마를 이끄는 장군 아카시우스(페드로 파스칼 분) 이야기를 그렸다. 역사물이라 지루할 거란 편견은 버려도 좋다. 148분이 쏜살처럼 지나간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빠른 편집으로 유명하다. 속도감 있는 전개에 손을 꽉 쥔채 몰입하게 된다. 미장센도 전작에 비해 진화했다.
고증에 남다른 공을 들인 덕분이다. 로마 건축, 의상, 생활의식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세세하게 재현했다. “로마 냄새 날 정도로 조사했다”고 말한 리들리 스콧 감독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영화적 흥미를 좇다 보면 당시 로마 역사까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덴젤 워싱턴은 “현장에 가면 압도적인 세트장이 배우를 기다리고 있다. 발을 디디는 순간 로마인으로 몰입할 수 있다”고 감탄했다.
세트장이 곧 역사고 서사다. 약 4307억 원 제작비가 든 영화는 당시 콜로세움과 검투사 전투 장면은 전작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다. 색감도 전체적으로 밝아졌다. 의상이나 갑옷도 전작보다 세련돼 아름다움을 더한다. 검투사 150명 전투복이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 만큼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
콜로세움 전투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돌진해 오는 코뿔소와 포악한 개코원숭이 등 동물들과 펼치는 전투는 전에 없던 장면이다. 물이 가득 찬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해상 전투는 보는 것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특수효과(FX)가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 모든 게 가능해졌다.
주인공 루시우스가 로마 검투사가 되는 과정 역시 흥미롭다. 목숨을 피해 도망간 누미디아에서 로마 군대 함락으로 노예로 전락한다. 이후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 분) 눈에 띄어 검투사로 발탁된다. 목숨을 건 거듭된 결투 끝에 로마 최고 검투사로 등극하는 과정은 애처로운 동시에 실로 장엄하다. 영국 자그만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일하다 리들리 감독 눈에 띄어 블록버스터 주연이 된 서사마저 겹쳐 보인다.
카라칼라(프레드 헤킨저 분)-게타(조셉 퀸 분) 공동 황제가 펼치는 폭정은 실로 참담하다. 두 형제가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육 뒤가 얼마나 비참한지 교훈적으로 보여준다. 스모키 화장을 한 눈에 뿜어내는 둘의 광기 어린 연기도 감탄을 자아낸다.
노예에서 권력 최고자리에 오른 마크리누스도 주목할 만하다. 로마를 위해 일하지만, 실은 가슴 깊은 원한을 품은 자가 로마 왕정을 어떻게 농락하는지 보여준다. ‘말콤X’(1992) 이후 덴젤 워싱턴 인생작이라 부를 만한 인상 깊은 연기도 관전 포인트다. 88세 감독 리들리 스콧에게 계약된 영화가 왜 아직도 5편이나 더 남았는지, 이 영화가 그걸 증명하고도 남는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