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핵심은 슬라이더다. 모두가 커브, 스플리터, 체인지업 등 떨어지는 변화구를 얘기하는데, 정작 마운드에 선 투수들은 슬라이더 활용도를 높이는 데 열중하는 인상이다. 자동볼판정시스템(ABS) 개편이 만든 새로운 풍경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시즌 KBO리그 개막을 앞두고 ABS 기준을 살짝 바꿨다. 간단히 요약하면, 좌우폭은 동일한데 높이만 1㎝ 낮췄다. 큰 차이 없다는 인식도 있지만, 투수나 타자 모두 심리적으로 ‘낮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스프링캠프에서 날아든 소식을 종합하면 낮아진 ABS에 대비해 종 변화구 연마에 열을 올리는 투수가 늘었다. ‘대투수’ 양현종(KIA)도 캠프 평가전부터 커브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고, 최원준(두산) 임기영(KIA) 등 잠수함 투수들은 체인지업 낙폭을 키우는 데 열중했다.

타자도 다르지 않다. 낮게 날아드는 공을 커트하거나 골라내려는 자세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스트라이크존이 낮아졌다고는 해도 낮은 공만 던질 수는 없으니, 타자의 시선을 흔들 수 있는 하이 패스트볼을 섞을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실투가 날아들 확률이 높고, 각 큰 변화구를 제구하려다 보면 손에서 빠지거나 밀어 던지는 경우도 잦다. KBO리그 투수들의 수준이 그렇다.

시범경기에서 장타가 쏟아지는 것이나, 한 이닝에 다득점이 잦은 것도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제구가 완벽하지 않은 공은 언제든 강타로 연결할 수 있는 게 KBO리그 타선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래서 슬라이더’를 선택하는 투수가 여럿 보인다. 종이든 횡이든 슬라이더의 강점은 속구와 같은 스윙으로 꽤 긴 피치터널을 만들 수 있다는 점. 아무래도 비틀거나 벌려야 하는 구종보다는 제구가 쉽다. 컷 패스트볼이나 투심패스트볼, 메이저리그(ML)에서 크게 유행하는 스위퍼 등과 함께 ‘가장 일반적인 변화구’로 꼽힌다.

종이든 횡이든 히팅포인트에서 예리하게 변하면, 타자로서는 생각할 게 늘어난다. 롯데 찰리 반즈, NC 이용찬 등은 슬라이더를 적재적소에 가미해 타자들을 현혹했다. 무조건 낮게만 던지는 게 아니라 타자 눈높이를 공략하듯 공격적으로 뿌려 좌우 타이밍을 빼앗는 모습도 보였다.

몸쪽 슬라이더에 움찔한 타자는 바깥쪽 낮은 속구나 슬라이더가 유독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ABS를 이미 경험한 투수들이 ‘스트라이크존은 일정하다’는 타자들의 심리를 역이용하기 위해 슬라이더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규시즌 때도 ‘슬라이더’가 ABS시대의 새로운 마구로 떠오를지, 13일부터 재개하는 시범경기 2라운드의 소소한 관전 포인트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