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어디서 단내가 나지 않습니까.”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영화 ‘계시록’ 개척교회 목사 민찬(류준열 분)이 대형교회 목사로 가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냄새’를 일종의 계시로 생각한 장면이었다. 자칫 우스꽝스러워질 수도 있는 대사였지만, 꽤 호소력 있게 들린 건 류준열의 연기 덕분이었다. 떨리는 목소리와 공기를 휘감는 아우라로 지독하게 이상한 믿음에 빠진 목사를 완벽하게 소환해 냈다.
류준열은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가진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인간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다. 종교를 기독교로 가지지 않은 분들도 많이 봐주신 거 같다”며 “신의 계시를 순종하는 것을 선이라고 믿는 한 인간을 연기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영화 ‘계시록’은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비영어권) 1위에 오르며 인기를 입증했다. 무엇보다 ‘파레이돌리아’(사물이 얼굴로 보이는 현상)로 접근한 게 주효했다. 평범했던 목사 민찬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자연 현상을 신의 계시로 생각했다. 이후 눈빛 등 모든 게 달라졌다. 류준열은 “계시가 보이는 변곡점을 여러 군데 두고 스텝 바이 스텝으로 연기를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목사 연기는 실제 교회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다.
“제가 모태 신앙이다 보니까 교회와 밀접한 삶을 살았거든요. 개척교회부터 대형 교회까지 다 다녔어요. 요즘 유튜브가 잘 돼 있어서 목사님 설교도 많이 참고했고요. 마음을 나누는 목사님도 있어 실제 주기도문을 받아 영화에 넣기도 했고요.”
민찬이 부인 시영(문주연 분)의 바람을 알고 이를 자신의 입으로 회개하게 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셔. 고백해!”(민찬)
“저는 다른 남자와 간음을 하였습니다.”(시영)
류준열은 “대본을 볼 때도 임팩트가 있었던 장면”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서 누군가를 너무 쉽게 정죄하려는 게 사회에 만연하다. 그런 부분을 담을 수 있게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밝혔다.
“나는 내 죄를 고백했으니, 너는 깨끗해지라고 강요하는 아주 폭력적인 순간이죠. 여기서 흘린 눈물은 저도 맞는지 고민이 많았어요. 감정이 격해지면서 저절로 나왔거든요. 여러 버전으로 찍었는데 연상호 감독님이 잘 선택해 주신 거 같아요.”

류준열은 데뷔 10년을 맞이했다. ‘더 킹’(2017)에서 목포건달 최두일로 이름을 알렸고, ‘돈’(2019) ‘올빼미’(2022)로 주연 자리를 꿰찼다.
지난 시간을 평가해달라 묻자 그는 “고집이 좀 있었다. 그 고집으로 여기까지 왔고,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성취했다”며 “다만 다음 10년을 이 고집으로 갖고 가자니 생각만큼 속 시원하지 않다”고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괴로운 게 가이드도 없고 롤모델을 정하기가 어려워요. 늘 좋은 선택을 해야 하는데, 좋은 분들이 들려주는 조언을 많이 들으려고 해요. 좀 더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아직은 그 소용돌이 안에 있어요. 그게 어렵고 괴로워요. 하루하루가 고민이 많습니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