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배우 박해수가 연기 잘한다는 건 드라마나 영화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수많은 작품에서 선과 악을 오가는 과정에서 흔들림 없이 좋은 연기를 펼쳐왔다. 어떤 순간에도 임팩트가 있었다. 이전의 연기를 압도할 정도의 커리어 하이가 있을까 싶지만, 또 해냈다. 하도 많이 출연해 ‘공무원’이란 수식어가 붙는 넷플릭스의 신작 ‘악연’에서다.
‘악연’은 나쁜 놈들끼리 나쁜 일로 인연을 맺고 결국 좋지 않은 결말을 맞는 이야기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라고 지시하는 사채남(이희준 분)이나, 그 일을 맡아 수행하는 과정에서 다른 생각을 품은 길룡(김성균 분), 자동차 사고를 내고 시신을 묻으려 했던 안경남(이광수 분), 돈 많은 한의사를 벗겨 먹으려는 유정(공승연 분)과 그와 함께 설계를 한 목격남(박해수 분)까지, 올바른 인간이 없다. 서로 물고 물리는 과정이 박진감 있게 그려진다. 박해수는 그 안에서 악의 정점을 그렸다.

첫 등장하는 순간만 해도 덜 떨어진 바보인 줄 알았다. 안경남이 사람을 친 자동차 사고를 우연히 본 목격자였다. 어눌한 말투에 촌스러운 복장,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행태까지, 썩 끌리지 않는 면만 가득한 인물이었다. 3회까지만 해도 덜 떨어진 모습이었다.
곧 달라졌다. 한의원 원장이었던 안경남을 다짜고짜 찾아가 3000만원을 더 달라고 압박했다. 어눌한 바보의 베이스에서 간사한 얼굴이 엿보였다. 안경남은 뒤늦게 블랙박스를 뒤져본 뒤 조작된 사고라는 것을 알게 됐다. 현장에 있었던 유정(공승연 분)에게 이를 알렸다. 사실 유정과 목격남은 한 패였던 것. 안경남을 몰아붙이고자 나온 목격남의 진짜 얼굴이 공개됐다. 악한 얼굴에서 비린내가 났다.
양극단에 있는 두 이미지를 훌륭하게 그려냈다. 어리숙한 얼굴에서 극히 이기적인 사기꾼으로 변모하는 과정도 자연스러웠다. 온전한 악을 드러낸 이후부터는 질주했다. 자신을 위해 타인을 영혼을 낭떠러지까지 떨어뜨렸다. 필요에 따라 살인도 쉽게 저질렀다. 기본적인 인간성조차 말살된 사이코패스니까. 마지막엔 공포에 떠는 모습으로 색다른 시원함을 선사했다. 목격남은 조금도 용납해줄 수 없는 잔인한 인간이지만, 박해수 덕분에 기억에 남는 캐릭터로 남았다.

박해수는 의상이나 분장에 의존하지 않는다. 연극적인 인물보다는 현실에 붙어있는 이미지를 추구해 왔다. 따라서 작품 속 외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목소리나 말투조차도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 마치 송강호와 같은 접근이다. 겉으로 변화가 없을 뿐, 늘 인물의 성향을 완벽히 담는다. ‘악연’에서도 이제껏 본 적 없는 박해수만의 사이코패스를 창조했다.
아직도 두 작품이 남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자백의 대가’와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다. 고위 공무원으로 업그레이드 될 필요가 있는 필모그래피다. 미스터리 스릴러 ‘자백의 대가’에선 남편을 죽인 용의자로 몰린 윤수(전도연 분)를 쫓고, ‘대홍수’에선 안나(김다미 분)를 구하려는 구조대가 된다. 무엇이 됐든 늘 커리어 하이를 찍는 박해수라 두 눈 뜨고 몰입할 수 밖에 없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