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한 소년은 노래 부르기를 즐겼다. 자연스럽게 예술고등학교 실용음악과에 진학했다.
그는 대형기획사의 아이돌 연습생이기도 했다. 춤, 노래, 비주얼 등 모든 것을 평가받는 정글 같은 환경 속에서 매일 거울 앞에서 자신을 갈고 닦았다.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노래 외에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더 넓은 무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고등학교 졸업작품을 준비하던 무렵.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에 올랐고 연기와 노래를 결합한 장르의 매력에 빠졌다.
감정 전달을 넘어 하나의 서사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 작업은 소년에게 너무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뮤지컬에 대한 열정이 점점 커졌다. 결국 부모님과 깊은 대화를 나눈 끝에 배우로 꿈을 바꿨다. 쉽진 않았다. 무대 언어, 움직임, 호흡 등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소년은 이제 ‘배우 홍기범’으로 활동한다. 홍기범은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나 “기초가 정말 부족했다. 무대에서 시선처리도 할줄 몰랐다. 그런데도 매 순간, 실전이라고 생각했다. 대극장이든 소극장이든 무대에 오를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그렇게 무명의 시간을 성실히 견뎠다. 자신만의 색깔을 덧댔다. 전환점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어머니의 환각으로 등장하는 아들 ‘게이브’ 역을 맡았다. 게이브는 실존하지 않지만, 극의 정서적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홍기범은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를 살아있는 것처럼 표현해야 했다. 인물의 감정선과 상징을 고민하면서 내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 고음의 넘버, 복잡한 동선, 3층 구조의 무대를 오르내리는 체력까지 모두 감당해야 했다. 숨 막힐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 무대에서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노력은 관객에게 전달됐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자연스레 업계의 시선도 받았다. 최근 ‘중소극장 뮤지컬 어워즈’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데뷔 후 처음 선 시상식 무대는 긴장과 설렘이 교차했다.
홍기범은 “무대에 오르던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대선배님들이 앉아계셨고,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런데 트로피보다 무겁게 느껴졌던 건, 앞으로 제가 짊어져야 할 책임감이더라. (어떤 무대든) 가볍게 설 수 없는 자리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홍기범은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작품으로 ‘프랑켄슈타인’ ‘웃는 남자’를 꼽았다. “입시 때부터 그 작품들의 넘버를 수도 없이 들었다. 이 노래들에 대한 애정이 크다. 언젠가 무대 위에서 부르고 연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를 지탱하는 건 ‘사람’이다. 가족, 팬, 동료, 관객들 모두 큰 힘이 된다. 홍기범은 “혼자였다면 지금까지 못 왔을 것이다. 팬레터, 함께 무대를 만드는 동료들이 없었다면 매번 흔들렸을 것이다. 진심이 오가는 환경이 내 연기의 바탕이다. 무엇보다 꾸준히 자기 길을 걸어가는 배우,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