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지적인 ‘귀족 부인’ vs 냉소적이고 파괴적인 ‘정신 살인마’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배우 이영애가 35년 연기 인생에서 쌓아온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아름다우면서도 지적인 외모는 그대로지만, 냉소적이고 파괴적인 성격은 정반대의 이영애를 보여준다. 섬세한 연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그를 향해 관객들의 뜨거운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13일 서울 마곡 LG아트센터에서 만난 이영애는 지금까지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앞으로 찾아올 이들에게 관전 포인트를 설명했다.
이영애는 연극 ‘헤다 가블러’를 통해 3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다. 그가 연기하는 ‘헤다 가블러’는 19세기 상류층 귀족 부인이지만, 생각과 행동은 ‘이 구역의 광녀(狂女)’다. 성인 ‘금쪽이’라고 하기엔 소름 돋는 살인마와 같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살인마로 등장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영애가 연기하는 ‘헤다 가블러’는 정신 살인마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심리를 악의적으로 이용해 최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사실 이영애가 연극 ‘헤다 가블러’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여론은 ‘이영애를 위한 작품’이라는 썰이 돌았다.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혹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영애는 무대 위에서 소란을 단숨에 재웠다. 같은 배역이지만, 매회 스스로 색다른 연출을 자아내 ‘이영애가 연기하는 작품’이라고 고정시켰다.
연극을 좋아해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도 있지만, 이영애의 연극 무대가 낯선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볼거리이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공연을 보는 관객들도 다수다. 그래서 그의 등장과 동시에 공연장 여기저기에서 “예쁘다”, “정말 아름답다” 등의 감탄이 터진다.
하지만 그는 ‘배우’다. 외모로 승부하지 않고 연기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육체와 정신 모두 병들게 하는 이영애의 연기에 공연 초반 감정과 시선을 작품 내면으로 끌어당긴다.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이영애는 “날 보러와 준 관객들에게 감동해 개막 커튼콜 때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그랬더니 ‘테아 엘브스테드’ 역 (백)지원이가 ‘언니, ‘헤다’스럽게 해야지. 평정심을 잃지 마’라고 조언했다. 그 이후부터 무대의 막이 완전히 내려가기까지 ‘헤다’의 마인드를 지키려고 한다”며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관객들의 마음이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35년 연기한 베테랑 배우지만, 오랜만에 연극배우로 대중들에게 나서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대중매체 연기와 달리 ‘컷(CUT)’ 없이 155분 동안 쉼 없이 달리는 것도 힘에 부친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즐겁다”는 이영애다.
직접 홍보에도 나섰다. 이영애는 “30대 초반 지인에게 작품의 사전 지식 없이도 이해하기 전혀 어렵지 않은 작품이라며 공연에 초대했다. 공연 후 ‘연극이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다. 너무 재밌다’는 반응이었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젊은 친구들에게도 통했다는 생각에 ‘됐다’며 안심했다”고 전했다.
작품에 대한 자신도 넘쳤다. 그는 “어떻게 다 쉬울 수 있겠는가. 어려우면 어떤가. 그 어려움에서 위안을 얻는 게 연극”이라며 “그래서 연극을 보러오는 것이다. 아니면 드라마 시리즈를 보면 된다. 돈 내고 볼 필요 없다. 연극적인 건 사실주의보다 잘 맞다. 연극이 재밌다”고 설명했다.
‘헤다 가블러’의 포스터에도 직접 의견을 낼 정도로 작품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 이영애는 “권총을 들고 폼 잡고 촬영하다가 웃고 찍으니까 전인철 연출이 ‘너무 좋다. 이걸로 가자’고 했다”며 “웃음 속에 가려있는 악마적인 본성의 골이 더 깊다. 뒤틀린 결을 찾으러 가는 연극적인 고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남다른 인물 해석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헤다’의 마음을 알려면 내 눈을 봐야 한다. 대극장이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서 될 수 있으면 관객들을 보면서 연기하려고 한다”며 “아직 5회밖에 안 됐지만, 관심 가져준 만큼 좀더 열심히 연기해 끝까지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 끝까지 지켜봐 주시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한편 배우로서 진심으로 열정 연기를 펼치고 있는 이영애 출연, 연극 ‘헤다 가블러’는 6월8일까지 서울 마곡 LG아트센터 SIGNATURE 홀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