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일대 사찰과 문화유적지의 역사와 유래, 스페셜 스토리를 살펴보는 여정...
“찬란한 역사와 민족의 탁월한 문화유산을 다시금 기억, 우아하고 세련된 백제문화를 새롭게 이해”

[스포츠서울 | 글·사진 이상배 전문기자] 반백 장년(長年)들의 인연은 어느덧 1세대를 훌쩍 넘겨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ROTC 동기들로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올라 명예롭게 퇴직 후, 사회봉사의 작은 부분에 헌신하고 있는 이들이다. 지난 1월 강화 교동도 탐방에 이어 ‘충남일대 사찰과 문화유적지’를 찾아 떠나는 일정에 함께하며 사찰의 역사와 유래, 스페셜 스토리를 살펴보는 여정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공주시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위치한 ‘마곡사’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이자, 2018년 6월 전국 각지에 소재하는 산사들과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찰이다.
‘마곡사’ 창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해지는 데 가장 널리 알려진 설에 의하면,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640년(백제 무왕 41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다른 설은 통일신라시대 9세기에 무염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절을 지을 때 스승인 마곡 보철의 이름을 따서 ‘마곡사’라 명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전각의 대부분이 소실되었다가 1651년(효종 2년)에 대웅보전과 영산전·대적광전 등을 중수하였다 .
‘마곡사’는 구한말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일본 장교를 죽이고 은거하던 중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잠시 출가 수도하였는데, 이때 ‘마곡사’ 백련암에 몸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곡사’ 대광보전과 응진전 사이에 김구 선생이 광복 후 1946년 ‘마곡사’에 들러 심었다고 하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어 계룡산 국립공원에 위치한 유서 깊은 불교 사찰 ‘갑사(甲寺)’를 찾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다. ‘갑사’는 천 년 이상 역사를 지닌 고찰로, 계룡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져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 명소이자, 수행도량이다.

전해지는 기록에 의하면 백제시대인 420년경 아도 화상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조선 시대를 거치며 여러 차례 중창이 이루어졌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큰 사찰로 번창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조선 후기 재건되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인 사찰 배치를 따르고 있으며, 숲길을 따라 오르는 길이 고즈넉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어 찾은 곳은 ‘신원사(新元寺)’로 계룡산 국립공원의 남서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동학사·갑사와 함께 계룡산의 3대 사찰로 꼽히며, 특히 중악단(中嶽壇)과 같은 독특한 문화유산으로도 유명하다. ‘신원사’ 역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백제 의자왕 11년(651년)에 열반종의 개산조인 보덕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이는 확실하지 않으며, 백제 시대의 기와가 출토되어 그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신라 말기 도선국사가 중창하였고, 고려 충렬왕 24년(1298년) 무기 스님이 중건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무학대사가 중창하였다. 1866년(고종 3년)에는 관찰사 심상훈이 중수하면서 ‘신원사’라는 이름을 붙였고, 1876년 보연 스님이 중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조선시대 명성황후가 중악단을 중건 후 기도를 올리며 머무르기도 했던 사찰이다.

이어 부여 왕릉원과 서동과 선화공주 전설이 이어온 궁남지와 사비시대 수도 가장 중심에 있는 정림사지를 돌아보며 백제 왕조의 명운과 직결되는 상징적인 공간이었음을 새로이 깨닫는 시간이다. 어느덧 어둠이 짙어지자 연잎정식과 함께 막걸리 한잔으로 탐방 1일 차를 마감했다.


2일 차 첫 번째 찾은 곳은 국립부여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총 4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있는데 먼저 청동기 시대 중기를 대표하는 송국리와 마전리 유적 중심의 당시 생활상과 사비 백제의 불교문화, 백제 금동대향로 등을 살펴보자니 우아하고 세련된 백제문화를 새롭게 이해하는 시간이다. 박물관 견학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백제금동대향로 실감미디어 아트’로 화려하고 아름다움의 극치 그 자체다.



이어 백마강 횡포 돛단배를 타고 백마강변에 위치한 유서 깊은 사찰 ‘고란사(皐蘭寺)’를 찾았다. 백제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역사적 명소이다. 고란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려지지 않지만, 백제 제17대 아신왕 때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백제 멸망 후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궁녀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고려 현종 19년(1028년)에 중창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조선 정조 21년(1797년)에 은산면에 있던 승각사를 옮겨와 현재의 법당을 중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찰 이름은 절 뒤편 바위틈에 자생하는 희귀 식물인 고란초에서 유래하였으며, 고란초는 양치류에 속하는 은화식물로 제주도에서는 불로초로 불리기도 한다. 절벽에는 조선시대 학자 우암 송시열이 쓴 ‘낙화암(落花岩)’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어 찾은 사찰은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무량사’로 역시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다. 백제 후기 또는 통일신라 시대(창건 연대는 불명확)에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용하고 깊은 산속에 자리한 사찰로, 선비와 시인들이 즐겨 찾던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고려 시대의 목조건축물인 ‘무량사 극락전(국보 제292호)’이 유명한데, 이 건물은 고려시대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해가 저물며 2일 차 만찬은 대천항 해산물과 더불어 해수욕장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벗들의 웃음꽃은 밤새 하염없이 이어진다.

3일 차 첫 번째 찾은 사찰은 서산시에 있는 아름다운 작은 암자 ‘간월암’으로 ‘간월암’은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어 물때에 따라 섬이 되기도 하고 육지가 되기도 하는 독특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태안반도 끝자락, ‘간월도’라는 작은 섬에 있으며, 썰물 때에는 육지와 연결되는 모세의 기적 현상이 나타난다.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해 사진작가들과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이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본래는 절이었지만 현재는 암자로 유지되고 있다.

‘간월암’이라는 이름은 ‘달을 본다’라는 뜻으로, 달이 뜰 무렵 암자에서 보는 풍경이 아름다워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고승 무학대사가 수도했던 곳이라는 설이 있다.

이어 찾은 사찰은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德崇山) 자락에 있는 천년 고찰 ‘수덕사(修德寺)’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이자 우리나라 4대 총림 중 하나인 덕숭총림의 본산이다.
‘수덕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학계에서는 백제 위덕왕(재위 554~597년)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창건에 관한 설화로는 수덕도령과 덕숭낭자의 이야기와 공양주 여인의 전설이 전해지며, 이들은 모두 관세음보살의 화신과 관련된 전설로, 수덕사의 이름과 덕숭산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수덕사’는 깊은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선불교의 전통이 어우러진 사찰로, 방문객들에게 평화롭고 의미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어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 ‘개심사(開心寺)’이다. 백제 시대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시대에도 중요한 불교 사찰로 이어져 왔다.
‘개심사’는 특히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하며, 봄철 벚꽃과 단풍철에는 많은 관광객과 불자들이 찾는 명소이다. ‘개심(開心)’은 ‘마음을 연다’라는 뜻으로, 정신적인 안정을 찾기 좋은 장소로 여겨진다. 영험한 기도처로 알려져 있으며, 고요하고 깊은 산중에 위치하여 참선과 수행에 적합하며, 봄 벚꽃길·가을 단풍·겨울 설경으로 유명하다.

충남일대 사찰과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며, 반백 장년들의 우정은 깊어만 가고 사찰과 문화유적지 면면에서 찬란한 역사와 민족의 탁월한 문화유산을 다시금 기억해 보는 시간이다.
지난 3일간 여정은 어느덧 추억의 한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귀경길에 또 하나의 추억을 담기 위해 ‘남부지방 사찰 탐방’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반백의 벗들 그대들은 여전히 청년 장교이고,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sangbae0302@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