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유령’ 속 ‘배영순’·‘정순임’의 마음

삶과 죽음의 경계 앞에서 복잡 미묘한 심정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배우 이지하가 연극 ‘유령’을 통해 6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다. 33년 차 베테랑 배우이지만,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일터다. 하지만 그의 배우 인생에 있어 전환점인 건 분명하다. 모든 부분에서 말이다.

이지하는 3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유령’ 프레스콜에서 극 중 배역을 통해 배우이자 한 인간으로 사는 삶을 되돌아봤다.

6년 만에 연극 복귀작으로 선택한 ‘유령’은 무대 위에서 삶과 존재, 정체성을 질문한다. 각기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과 유령이 뒤섞인 상황에서, 이지하는 ‘배영순’이기도 ‘정순임’이기도 또 ‘이지하’로서 산다.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오가는 전개의 중심에 이지하가 서 있다. 그는 맡은 배역에 몰입했다가 어느 순간 ‘이지하’로 돌아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대본인지 애드리브인지 헷갈릴 정도다.

연습 기간 그의 삶 역시 현실과 연극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개막일인 오늘(30일) 새벽에 일어난 화재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이지하는 “오늘 새벽 5시쯤 아랫집에 불이 났다. 우리 집까지 불이 번져 모두 대피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안타깝게도 고양이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라고 운을 띄었다. 이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불을 지른다. 무대에서 ‘불 질러버리자’ 하더니 진짜 우리 집에 불이 났다. 작품도 불처럼 활활 타올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생과 사를 오가는 현장을 직접 경험한 이지하에게 극 중 마주하는 그의 데스마스크(death mask)가 더 어렵게 다가왔다.

그는 “어차피 인형이라고 생각해서 처음엔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던 데스마스크였다. 하지만 실제 뜰 땐 너무 힘들었다. 그날 밤 과호흡이 와서 토하고 두통약을 먹었다”라며 회상했다.

막상 데스마스크를 보니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는 이지하는 “마지막 염하기 전에 뵀다. 분명히 우리 아버지인데 아버지 아닌 것 같았고, 돌아가신 것 같은데 살아계신 것 같았다. 살아계신 데 물체 같고 이상했다. 슬프다는 단순한 감정이 아닌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이지하는 마지막 시연 장면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죽어서도 세상을 떠나지 못한 떠돌이 유령과 함께 자신을 직접 화장한 후 인생의 굴레와 작별하는 순간이었다.

이지하는 “엔딩 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자꾸 멈추게 되는 느낌이다. 아직 그 감정을 분명히 알고있지 않은 것 같다. 공연하면서 알게 될지, 계속 모를지 나도 모르겠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하지만 단 하나는 분명하다. 극 중 “세상은 무대고, 인간은 배우다”라는 대사처럼 배우로서의 확신은 더욱 확고해졌다.

자신의 모든 것이 연극에 드러나 있다는 이지하는 “최대한 연기 말고 이야기의 존재로 반응하고자 한다. 에너지를 가진 덩어리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며 “때론 연기가 거칠 수도 부족할 수도 미흡할 수도 있지만, 이게 작품에 훨씬 잘 어울릴 것 같다”라고 앞으로의 무대를 예고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생각과 노력이 배우로서 좋은 시간 같다. 어떠한 영감을 받기도 한다”며 “56세, 이 나이에 30년 연기하는데 지금 이 순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너무 행운이다. 감사한 마음과 진심으로 연기하고, 또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지하의 연기 인생 32년이 담긴 ‘유령’은 이달 30일부터 6월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