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야만의 시대는 꼭 정치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한 줌의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은 약자를 유린했다.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옷을 벗겨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는 에로영화 제작기를 통해 시대의 치부를 드러낸 작품이다. 1980년대의 치부가 진선규의 얼굴에 가득 담겨 있다.

진선규가 연기한 구중호는 구정물 같은 인간이다. 나름 성공한 영화제작사 대표, 이른바 ‘난 놈’이다. 그러나 되먹지 못했다. 윤리나 도덕, 정의, 인류애 따윈 없다. 철저한 이기주의로 점철됐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잔혹하다. 아무리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 거라 이해해주려 해도, 하는 짓거리가 천박하다. 봐도 봐도 진절머리 나게 미운 인간이다. 진선규가 그 얼굴을 만들었다.

진선규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현장이 늘 열려 있었다. 제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 정말 많은 시도가 있었고, 그중에서 최고의 장면만 감독님이 선택한 것 같다. 구중호를 향한 악평에 해당하는 칭찬은 제작진의 몫”이라며 웃었다.

배우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 설득을 갖고 표현하는 게 배우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세밀하게 감정을 짚어보고 이유를 찾아야 한다. 친구로도 두고 싶지 않은 구중호를 진선규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구중호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당시에 3S 정책이 있었잖아요. 그 아이템에 능숙했던 사람인 거죠. 꼭 비굴하기만 해서 성공한 사람은 아닌 거예요. 주어진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렇게 산 거라 생각해요. 솔직히 구중호도 불쌍해요. 여배우들은 대표 사무실 들어와서 깽판 놓고, 물건 다 부수고요. 현장에서 ‘나는 영화를 사랑한 죄밖에 없다’고 말했어요. 타당성을 줘야 하니까요. 진짜 나쁜 놈들은 정부 사람들이죠. 구중호도 어쩔 수 없었다고 봐요.”

모든 행동이 비호감인데, 이상하리만치 약간의 섹시한 매력이 느껴진다. 어떤 인물이든 호감으로 만들어내는 진선규의 힘이 여기서 전달된다.

“지지고 볶았지만, 그래도 함께 살던 미나(이소이 분)가 죽었을 때 혼자 고민하는 지점이 있잖아요. 중호에게도 어떤 깊은 마음이 있는 거죠. 감독님께서 멋졌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너무 나쁘게만 보이는 것에 경계가 있었어요. 웃는 모습은 최대한 해맑아지려고 했어요. 순수하게 이기적인 느낌이 들면 차라리 덜 밉잖아요.”

작품은 시즌2를 암시하며 끝난다. ‘애마부인’이 10편이 넘는 시리즈와 수많은 외전을 낳은 작품이다보니 ‘애마’ 역시 시즌제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정부 몰래 장부를 만들었다 걸린 구중호는 후반부 흠씬 두들겨 맞는 모습만 나왔다.

“죽었을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안 죽었다고 가정하면 그래도 영화를 사랑했던 중호니까 다시 영화로 재기하지 않을까 싶네요. 개과천선도 해서 사람답게 살아보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