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오리지널 내한 20주년 공연…이달 27일까지
21세기에 떠나는 1482년 프랑스 파리로의 시간여행
시선강탈·심장폭격…보고 또 봐도, 다시 공연장 찾는 이유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전 세계 뮤지컬 팬덤을 거느린 대작 ‘노트르담 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 공연이 현재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작품에는 내한 초연 멤버인 ‘프롤로’ 역 다니엘 라부아를 필두로 한국팬들이 사랑하는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3년 만에 돌아온 한국 투어는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팀바니 연주와 함께 웅장한 ‘서곡(Ouverture)’이 심장을 두들긴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를 무대화한 작품은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성스루(Sung-through) 뮤지컬이다. 가질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 ‘에스메랄다’를 향한 욕망과 탐욕, 질투를 사회적·정치적 배경에 녹인다.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봉건 귀족과 교회의 타락을 고발한다.
어둡고 절망적인 비극이다. 인간의 비열하고 처절한 싸구려 욕망을 드러낸다. 하지만 아름다운 넘버와 화려한 춤사위에 밝은 미래를 꿈꾸는 희망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고귀한 감정에 얽힌 인간의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인간의 흑과 백을 쉴 틈 없이 교차 편집해, 시간이 순식간에 흐른다.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은 이유다.
공연은 당연히 프랑스어로 진행된다. 하지만 걱정할 일은 없다. 좌석마다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번역된 가사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곡마다 클라이맥스(climax)에 흡수되는 걸 추천한다. 대부분 넘버의 가사가 반복된다.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시선을 맞춘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떠한 감정인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 시대불변 끝없는 탐욕…‘사랑’이란 ‘고통’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표 넘버 ‘대성당의 시대(Le Temps Des Cathedarlls)’가 울려 퍼지는 순간, 공연장에 있는 모든 이들은 1482년 프랑스 파리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네 명의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 아니, 정확히는 세 명이다. ‘에스메랄다’와 혼인한 음유시인 ‘그랭구와르’는 여인보다 시를 더 사랑했으니, 스토리텔러(Storyteller)로서 제외하는 게 맞다.
노트르담 대성당 광장에서 춤추는 집시 ‘에스메랄다’는 허락되지 않은 사랑 앞에 인간이기를 포기한 주교 ‘프롤로’,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한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진) 근위대장 ‘페뷔스’, 순수한 사랑을 품지만 마지막까지 남의 종으로만 남은 꼽추 ‘콰지모도’ 인생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집착과 야욕에 눈먼 이들로 인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다. 그의 주검을 부둥켜안은 ‘콰지모도’의 절규만 남는다.
‘콰지모도’는 ‘사랑은 인간이 느끼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이는 남녀 간 사랑뿐 아니라 인류애도 대변한다. 집시들은 국가, 피부색이 달라도 방랑자, 이방인이라는 공통분모로 공동체를 이룬다. 내 몸 하나 편히 뉠 데 없는 떠돌이는 인간이 욕심으로 채운 보이지 않는 벽 앞에 가로막혀 자유를 빼앗긴다.
작품의 배경은 15세기. 500여 년이 지난 21세기에도 변치 않은 인간의 추악함을 보여준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국가 대 국가의 쟁탈전도 있지만, 우리 주위에서도 사리사욕(私利私慾)으로 인해 크고 작은 미움과 다툼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작품은 인간의 삶에 ‘진실한 사랑’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인생에서 안타까운 순간이 있을지라도 아름다운 순간도 있다고 되뇐다.

◇ 꾸미지 않은 순수한 무대…배우·댄서의 울림에서 느껴지는 전율
‘노트르담 드 파리’는 군더더기 없이 물흐르듯 스토리가 전개된다. 불필요하거나 과장된 요소 없이 본질에만 집중한다. 진지한 극이어도 혹여나 관객이 지루할까 봐 어설픈 상황으로 블랙코미디를 억지로 끼워 넣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배우의 목소리, 댄서의 몸으로써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행위예술로 꾸며진다.
세월이 지나도 ‘노트르담 드 파리’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아름다운 넘버들 덕분이다. 작품의 노래들은 탄탄한 스토리를 뒷받침해준다기보다 인물의 서사를 각 장면과 유연하게 연결한다.
배우들이 연기를 노래로 풀어내 감탄을 자아낸다.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는 말을 증명하듯, 관객들의 감성을 녹이는 배우들의 힘이 더한다.
16명의 댄서의 에너지는 극적인 연출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현대무용, 아크로바틱, 브레이킹 등 묘기에 가까운 안무가 빈틈없이 무대 전체를 채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를 실사판으로 가져온 듯한 파워풀한 공연은 단순 볼거리를 넘어, 인물·장면별 심리를 대신한다. 무대 디자인이 단순한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무대 위 장치가 많았다면, 오히려 작품의 핵심을 흐리는 거추장스러운 도구가 됐을 것이다.

◇ 인물 내면을 대변하는 ‘숨은그림찾기’
무대 위에는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와 심리를 표현하는 장치적인 요소들이 숨어있다.
먼저, ‘에스메랄다’를 ‘제비’에 비유한다. 제비는 예로부터 길조와 행운을 상징한다. 아름다운 여인은 결국 갈등의 원인이 되지만, 이들 앞에 처음 등장했을 땐 황홀하고 반가운 손님이었을 것이다. 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최소한의 인간 대접조차 못 받았던 집시들에게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긴 그가 희망의 존재와도 같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사랑과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연관돼 있다.
가장 순수한 사랑을 지켰던 ‘콰지모도’는 생김새 때문에 ‘에스메랄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안식처인 노트르담 대성당은 찬란하게 아름답다. 대성당은 종교시설이자 지역 사회의 중심지에 위치해, 이를 중심으로 공동체 생활이 이뤄진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성당 앞 광장에서 주요 행사가 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고일(Gagroylr) 석상은 ‘콰지모도’의 외모처럼 괴상해 보이지만, ‘장미의 창(Rosaces)’이라고 불리는 스테인드글라스의 햇살은 오색빛깔 힐링을 선사한다.
‘콰지모도’의 유일한 친구인 종은 3개다. 작은 종은 아이들을, 큰 종은 항해하는 뱃사공을, 가장 큰 종은 결혼하는 이들을 축복하기 위해 울린다. 또 하나, 흉측한 모습 탓에 사람들에게 외면당하지만, 종지기 ‘콰지모도’만이 울릴 수 있는 종소리는 그의 상상 속 자유를 외친다.
한편, 사랑이 남긴 고통,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예술로 승화한 ‘노트르담 드 파리’는 오는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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