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국내 최초 크리에이터라 불릴만한 삶을 살았다. 늘 새로운 것을 만드려 했다. 후배들과 격없이 지낼 뿐 아니라 어려운 처지에 있는 후배들을 늘 다방면으로 도우려 했다. 어렸을 적부터 어른이란 평가가 많았다.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개그계의 대부’ 전유성이 25일 안타깝게 하늘로 떠났다.

영화사에서 근무하다 TV 연기자를 하고 싶었지만, 연이은 오디션 낙방으로 인해 코미디계로 전향했다. 연기를 배우지 않아 곽규택을 찾아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방송 작가로 먼저 방송일을 시작했다.

전성기였던 1980년대 서세원, 주병진, 김형곤, 심형래, 최양락, 이봉원, 임하룡, 이경규, 이성미, 김미화, 박미선 등 그야말로 전국구 스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때 함께 했다. 워낙 재밌는 후배 연기자들 사이에서 노련한 아이디어로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맡았다.

잘 웃지 않는 성향 덕분에 코너도 탄생했다. 1990년대 중반 SBS ‘좋은 친구들’에서 ‘전유성을 웃겨라’라는 코너를 맡았다. 일반 시민이 개인기나 개그로 전유성을 웃기면 상품을 받는 코너다. 어지간해서는 절대 웃지 않는 모습으로 의외의 웃음을 남겼다. 신선한 개그가 아니면 웃음을 참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갈갈이 박준형이 일반인 신분으로 ‘전유성을 웃겨라’에서 우승하며 처음으로 TV에 나왔다.

KBS의 간판 개그 프로그램이었던 ‘개그콘서트’의 원안자다. 대학로에서 간간이 이루어지던 소극장 개그를 방송으로 끌고 들어왔다. 사실상방송 3사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창시자다. ‘코미디 시장’이라는 코미디 극단을 운영해 안상태, 김대범, 황현희, 박휘순, 신봉선, 김민경 등을 발굴했다. 이와 관련해 “오디션 봐서 뽑으면 어차피 될 놈을 뽑는 거지, 내가 키우는 게 아니지 않느냐?”라며 겸손하게 표현한 것도 회자되는 지점이다.

안목이 뛰어나 수많은 스타들의 은인으로 꼽힌다. 이문세와 주병진을 비롯해, 가수 김현식, 최양락의 아내로도 유명한 팽현숙도 전유성의 권유로 방송에 입문했다. 훗날에는 조세호와 김신영을 제자로 키웠고, 배우 한채영도 직접 캐스팅했다.

선구자적인 사업들을 많이 고안해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심야 볼링장과 심야 극장이 있다. 1999년 나온 저서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에는 ‘신선한 공기를 캔에 담아 팔기’ ‘맥주 주유소’ ‘읽던 책 산골 아이들에게 기증하기’ 등 일상이나 현실이 된 아이디어가 많다. 적잖은 저서도 남겼다. 1990년대 컴퓨터에 심취해 쓴 저서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는 정보통신부에서 상까지 받았다.

두 달 전까지 방송에 나왔다. 김용만, 지석진, 김수용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조동아리’에 나와 근황 및 추억을 나눴다. 이 방송은 전유성의 유작이 됐다.

25일 폐기흉 증세가 악화되면서 전북대학교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날 결국 병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당일 오후 9시 5분경 입원 중 사망했다. 향년 76세. 장례는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진행되며, 서울아산병원에 빈소가 마련됐다. 이후 고인은 본인의 주 활동무대였던 KBS에서 노제를 치른 뒤, 말년에 머물렀던 남원 지리산 자락에 수목장으로 안장될 예정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