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다 이루어질지니’는 판타지 로맨스라는 장르적 외피 아래, 인간의 욕망과 구원의 본질을 탐색하는 깊이 있는 서사를 펼쳐낸다.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김우빈 분)와 그를 깨운 인간 가영(수지 분)의 계약 관계는, 언뜻 클리셰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면에는 불교의 핵심 사상인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는 심오한 철학적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 이 작품이 제시하는 진정한 해피엔딩은 소원의 물리적 성취가 아니다. 모든 집착과 대가성을 내려놓은 순수한 베풂을 통해 완성되는 역설적 구원에 있다.
◇ ‘기브앤테이크’ 사회에 대한 정교한 은유

극의 초기 설정은 철저히 계산적인 ‘유주상보시(有住相布施)’의 세계관을 대변한다. 이는 보답이나 대가를 바라는 조건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지니에게 소원을 비는 행위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가로 지니의 자유 혹은 존재 이유를 담보하는 명백한 거래다. 여기서 베풂은 소원의 결과에 단단히 얽매여 있으며, 순수함과는 거리가 먼 상호의존적 계약에 불과하다.
인간들의 소원 역시 욕망의 충족이라는 결과에 철저히 머무르는 상태, 즉 집착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설정은 투자에 대한 이익을, 호의에 대한 보답을, 사랑에 대한 동일한 감정을 기대하는 현대 사회의 거래적 인간관계와 자본주의적 패러다임을 정교하게 은유한다. 극 초반의 주변부 인물에서 나타나는 비극은 바로 이 계산과 기대가 어긋날 때 발생하는 필연적 고통이 낳는 실존적 공허함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 계산기를 버리는 순간, 진짜 감정이 시작된다

서사가 전환점을 맞이하는 것은 지니와 가영이 계약의 틀을 넘어 서로의 본질적 고통에 공감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 감정적 연대와 관계의 심화는 ‘유주상보시’에서 ‘무주상보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내는 핵심 동력이다.
‘무주상보시’란 어떠한 대가나 결과에 대한 집착 없이 순수하게 베푸는 행위를 뜻한다. 지니가 자신의 소멸을 감수하며 가영의 안녕을 위하거나, 가영이 자신의 궁극적 소원을 포기하고 지니의 존재 자체를 구원하려는 선택의 순간들은 무주상보시의 정수가 발현되는 지점이다. 그들의 행위는 더 이상 ‘나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상대방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순수한 연민과 사랑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보답이나 관계의 영속성이라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서로에게 가장 큰 선물을 선사한다.
◇ 소원이 사라질 때, 비로소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이 시리즈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소원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는 순간’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계산 없이 베풀어진 순수한 사랑과 희생이 마침내 지니와 가영을 ‘계약’이라는 속박에서 해방시킨다.
이는 결국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타인에게 베푸는 행위를 통해 진정한 기쁨을 얻고 있는가, 아니면 그 보답으로 얻게 될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가? ‘다 이루어질지니’는 베푸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자 보상일 때를 말한다. 그때 비로소 나와 타인 모두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마법이 일어난다는 고전적인 지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소원 성취를 넘어선 무조건적인 베풂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진정한 클라이맥스이자,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