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전 묘미는 뺏고 빼앗는 타이밍 싸움
ABS+피치컴 도입으로 포수 중요성 약화
‘속구’ 노림수 역이용 못한 SSG 배터리
샅바싸움 내준 통한의 연속 커브 두 개

[스포츠서울 | 문학=장강훈 기자] 단기전의 묘미는 볼배합이다. 자동볼판정시스템(ABS)과 피치컴이 도입됐어도, 투수와 타자의 타이밍 싸움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포수의 가치가 퇴색했다고는 하나, 단기전에서는 포수의 임기응변이 경기 결과를 상당부분 바꿔놓기 마련이다.
SSG와 삼성이 9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엣서 맞붙은 2025 KBO리그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준PO) 1차전도 그랬다. 이른바 ‘게임 플랜 B안’을 빠르게 가동하지 못한 게 승부를 갈랐다.

이날 문학은 습도 70%대에 흐린 날씨였다. 투수 입장에서는 속칭 ‘공이 쫀쫀하게 손에 들러붙는 날’이다. 실밥이 찰지게 긁히는 날이라는 의미다. 조도가 낮아 조명탑을 켜야할 정도라면, 감각으로 때리는 속구보다 예리하게 꺾이는 ‘빠른 변화구’가 효과적인 날. 각이 크고 느린 커브를 ‘보여주는 공’으로 활용하면서 슬라이더나 체인지업을 적절히 배합하면 타자가 고전할 수밖에 없다.
KBO리그 데뷔 시즌에 준PO 1차전 선발로 낙점된 SSG 미치 화이트는 이런 변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큰 것 한 방을 내주고 시작했다. 시속 152㎞짜리 높은 초구 속구가 상대 리드오프 이재현의 배트에 걸려 좌측 담장 뒤에 떨어졌다.

일격을 당했지만, 타순이 한바퀴 돌 동안 화이트의 볼배합은 힘 위주였다. 1회는 속구-커브 조합으로 24개나 던졌다. 2회부터 투심과 컷패스트볼, 스위퍼 등을 섞었는데, 3회초 선두타자 르윈 디아즈에게 던진 속구가 중견수 앞에 떨어지자 방향을 잃었다.
일발 장타가 있는 김영웅에게 초구 커브를 던졌는데, 시원한 헛스윙. 타이밍에 변화를 줄 법했지만 SSG 배터리는 같은 구종을 또 선택하는 실책을 범했다. 궤적과 타이밍을 잊지 않은 김영웅은 한 가운데로 몰린 시속 128㎞짜리 커브를 우측으로 115m나 보냈다.

힘있는 왼손 타자에게 높은 커브를 연거푸 던지는 건 시범경기 때나 할 수 있는 선택. 이 선택 하나가 잠자던 삼성의 타격 의지에 불을 지폈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