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백승관 기자] 기획이라는 단어는 업무 현장에서 자주 쓰이지만, 정작 제대로 이해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좋은 기획’은 무엇이고, ‘기획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모호하죠. 휴먼큐브에서 출간된 남충식 저자의 <다시, 기획은 2형식이다>는 이런 상황에서 기획의 본질을 다시 짚어준 책입니다. 10년 전 출간되어 스테디셀러가 된 <기획은 2형식이다>의 개정증보판입니다.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롭게 다듬어진 이번 책은 기획을 배우는 사람은 물론, 조직 속에서 일의 방향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유의미한 통찰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표현과 함께 편하게 읽기 쉽게 한 편집 디자인 덕분에 책을 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본 또한 책등이 노출되어 있어 특별합니다.

저자는 기획을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으로 단순명료하게 규정합니다. 이때 핵심은 ‘문제’를 올바르게 보는 힘입니다. 그는 기획의 구조를 영어 문법의 2형식(S+V+C)에 비유하며, ‘기획은 결국 문제(Problem)를 정의(P-Code)하고, 이를 해결(Solution-Code)로 연결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기획은 아이디어를 내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명확히 규정하는 일”이라는 주장입니다.

사실 책은 위 주장의 동의반복이며, 많은 사례를 통해서 증명합니다. 이점이 책의 강점입니다. 책의 중심 개념인 P코드와 S코드는 기획의 두 축을 이루죠. P코드는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S코드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저자는 “좋은 기획은 P코드에 75%, S코드에 25%의 비중을 둔다”고 해요. 화려한 아이디어보다 정확한 문제 정의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흔히 해법을 찾는 데 몰두하지만, 실상 많은 실패는 ‘문제를 잘못 정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본격적으로 기획의 방법으로 들어가 저자는 기획을 ‘창조’로 보지 않습니다. 다름아닌 ‘조합’입니다. “기획은 훔치기와 뒤섞기의 기술”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훔치기’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새로운 맥락으로 재구성하는 일입니다. 기획 좀 해봤다면 익숙한 주장일 것입니다.

가령, 세종대왕이 음성기관을 관찰해 한글을 만든 것, 아이폰이 전화기·카메라·인터넷을 결합한 것 모두 ‘훔치고 섞은’ 기획의 산물이라는 주장이죠. 새로운 발상은 완전히 새로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자원을 ‘낯설게 결합하는 과정’이라는 말에는 강하게 수긍합니다.

“기획은 태도다”라는 문장은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획자는 ‘왜?’를 반복해 묻고, 현상을 낯설게 바라보며, 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저자는 “기획의 본질은 관찰력, 질문력, 그리고 실행의 용기”라며, 이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것이죠.

개정판에서는 디지털 환경 변화에 따른 기획의 패러다임을 보완했습니다. 데이터 시대에 기획자는 더 이상 ‘아이디어맨’이 아니라 ‘문제 정의자’여야 한다는 점을 짚으며,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인간의 통찰력이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물론 저자의 주장처럼 모든 ‘2형식 구조’가 모든 기획 상황을 포괄하긴 어렵습니다. 복잡한 조직과 시장 환경에서는 문제와 해법의 경계가 종종 뒤섞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자의 의도는 명쾌합니다. 기획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복잡한 것부터 하려 하지 말라, 본질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죠.

<다시, 기획은 2형식이다>는 기획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뿐 아니라, 스스로의 일과 삶을 설계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유효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곧 ‘삶을 기획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죠.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다시 묻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내가 풀려는 문제는 과연 올바르게 정의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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