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빈의 처절한 흑화, 선(善)이 무너지는 순간의 기록

장윤주의 압도적인 악역 변신,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 시너지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착한여자 부세미’는 선량했던 한 인간이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인간 본성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는 웰메이드 심리 스릴러다. 배우 전여빈이 그려내는 주인공 ‘부세미’의 처절한 흑화 과정도 압권이지만, 이 드라마의 진짜 심장은 그녀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절대악, 장윤주의 소름 돋는 연기에 있다. 작품은 인물의 미세한 심리 변화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연출과 두 배우의 숨 막히는 연기 대결을 통해 장르적 쾌감과 묵직한 서사를 동시에 잡는 데 성공한다.

드라마의 주인공 부세미(전여빈 분)는 이름처럼 평범하고 선하기만 했던, 작은 행복과 성실함으로 자신의 세계를 지켜온 인물이다. 드라마는 예고 없이 찾아온 비극이 그녀의 믿음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시청자의 감정 이입을 극대화한다. 전여빈은 특유의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기로, 평범한 시민이던 부세미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서서히 각성하고, 마침내 복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인물로 변모하는 과정을 숨 막히는 열연으로 그려낸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과 메마른 표정은, 선(善)이 어떻게 악(惡)의 얼굴을 닮아가는지에 대한 처절한 기록이다.

이 모든 비극의 중심에는 장윤주가 연기한, 감정마저 거세된 듯한 절대악이 자리한다. 유력 그룹 회장의 딸을 살해하고도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그녀는 부세미와 완벽한 대척점에 선 인물이다. 장윤주는 모델 출신다운 서늘한 비주얼과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면서도 어떤 감정도 담지 않는 건조한 눈빛 연기로, 환경이나 서사가 만들어낸 악이 아닌 ‘순수악’이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특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고 부세미를 조롱하는 장면들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존재론적 공포감마저 자아내며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결국 ‘착한여자 부세미’의 백미는 선(善)을 상징했던 전여빈과 악(惡)을 체화한 장윤주가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 있다. 연약하지만 복수를 위해 단단하게 자신을 세워가는 전여빈의 처절함과, 모든 것을 가졌지만 공허한 눈빛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는 장윤주의 오만함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실로 엄청나다. 두 배우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대치 장면에서 대사보다 표정과 눈빛, 미세한 숨결만으로 서로의 심연을 탐색하며 화면을 장악한다.

복수극의 장르적 관습이나 주변 인물의 평면적인 서사 같은 사소한 흠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착한여자 부세미’는 그런 아쉬움을 논하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만드는, 전여빈과 장윤주의 압도적인 연기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졌다. 이 드라마는 결국 두 배우가 온몸으로 써 내려간, 선과 악의 경계에서 펼쳐지는 가장 처절하고 매혹적인 심리 보고서로 기억될 것이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