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배우가 신뢰를 보여준다는 건 의미가 남다르다. 인물이 지닌 감정에 오차가 없을 거라는 믿음이다. 그 확신이 신마다 이어질 때 시청자는 몰입에 접어든다. 배우의 연기력이 작품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요즘 점점 신뢰를 보여주는 배우가 있다. 신예은이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 이후 달라진 퍼포먼스를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작품마다 밀어붙이는 힘이 전달된다. 강인하고 단단하다. tvN ‘정년이’를 시작으로 JTBC ‘백번의 추억’이나 디즈니+ ‘탁류’에서의 힘은 예전의 신예은과는 다르다.

신예은은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커피숍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런 칭찬은 처음이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8년 동안 원하는대로 안되기도 하고, 기대 이상으로 사랑 받아보기도 했다. 요즘은 정답이 없고 하니까, 내가 확신을 갖고 나아가자는 마음으로 임한다. (김)태리 언니랑 (김)다미 언니에게 많은 걸 배웠다”고 웃었다.

이번 ‘백번의 추억’에서 직업은 버스 안내양이다. 1980년대, 버스가 교통수단의 중심이었던 시대에 꼭 필요했던 존재였다. 몰려드는 인파를 정리하고 버스 기사의 눈과 귀가 되어 준 존재다. 버스 안내양을 하다 만난 두 청춘 여성의 연대가 담겼다. 하루 종일 힘든 일을 감내하는 것도 힘든데 서열 싸움까지 해야 했던 두 청춘이 손을 꼭 붙잡고 불의와 싸우는 과정이 그려졌다. 영례(김다미 분)와 종희(신예은 분)가 그 주인공이다.

신예은은 “버스 안내양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해보고 싶었는데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종희를 제가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팔바지와 긴 머리, 내면의 결핍이 있는 인물이 좋았다”고 말했다.

종희는 여자들이 갖고 싶어하는 매력을 모두 소유했다. 현실에 순응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영례와 달리 종희는 불의한 것에 저항하는 타입이다. 잘못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말투도 차갑다.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인데, 영례에게만은 천사다. 평소 ‘댕댕이’(강아지의 신조어)라 불리는 신예은은 또 멋진 가면을 썼다.

“예전에는 ‘왜 싸가지 없게 보이지?’라는 오해를 받았던 적도 있어요. ‘웃지 않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구나’, 그래서 연기할 때 많이 표현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제 숙제는 제가 가진 본연의 것을 100% 연기로 표현하는 게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에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계속 생각해요.”

겸손이다. 분석력도 뛰어나다. 미세한 차이도 매우 분명하게 나눈다. ‘더 글로리’ 연진의 미소는 타인을 ‘놀잇감’으로 여긴 순수악을, ‘정년이’의 영서에겐 결핍에 얽매인 얼굴을, 종희에선 결핍의 극복에서 오는 여유를 담았다고 짚었다. 철저한 고민과 후회하지 않는 기세로 덤빈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는 게 있다. 진짜 감정을 담고 연기하는가, 아니면 그럴 듯한 연기로 포장하는가다. 시청자는 속일지라도 스스로는 속이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진짜 뱉는 것과 꾸며진 것의 차이가 있어요. 누군가는 속여도 저는 못 속여요. 분노라고 치면 진짜 머리가 뜨거워져서 내뱉는 게 있죠. 그러면 진정성이 달라요. 열 번에 한 번 될까 말까 그래요.”

데뷔 8년차, 해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안정적인 연기 덕에 꾸준한 캐스팅 제의가 예상된다. 신예은은 다작이 목표다.

“좋은 작품이라면 어떤 상황이더라도 임할 것 같아요. 잘 안되는 순간도 있지만, 어떻게든 돌파하려고 해요. 그렇게 뚫고 가다 보면 성장한 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봐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