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글·사진 | 양평=원성윤 기자] 메르세데스-벤츠 GLS 580의 거대한 도어는 묵직한 금고 문처럼 열리고, 그 안은 외부 세계와 완벽히 차단된 S클래스의 라운지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V8 엔진은 ‘으르렁’거리는 대신 ‘낮은 숨’을 내쉰다. 2.7톤의 강철 요새는 출발 준비를 마쳤지만, 그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는 침묵. 이것이 ‘SUV의 S클래스’가 정의하는 ‘품격’의 시작이다.

아델(Adele)의 ‘스카이폴(Skyfall)’을 재생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피아노 선율이 조용히 번져나가는 도입부. GLS 580의 첫 움직임이 꼭 이와 같다.

가속 페달에 발을 올리면, 8기통 엔진이 먼저 나설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듯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EQ 부스트)가 차체를 조용히 밀어낸다. 거대한 중량을 가졌다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매끄럽고, 소리 없는 출발이다. 이 묵직한 거함이 마치 유령처럼 미끄러져 나가는 이질적인 감각. 이것이 GLS 580이 선사하는 첫 번째 놀라움이다.

대로에 합류하며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았다. ‘스카이폴’의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터져 나오는 클라이맥스처럼, V8 엔진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이 차는 결코 ‘포효’하지 않는다. 두터운 이중 접합 유리가 모든 소음을 차단하는 동안, 발밑 저편에서 ‘두두두’ 하는 V8 특유의 벨벳처럼 부드러운 베이스 음만 느껴진다. 489마력의 힘은 폭력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강력한 조류가 등 뒤에서 묵묵히 밀어주는 듯한 ‘조용한 폭발력’으로 발현된다. 운전자는 속도계의 숫자가 비현실적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비로소 이 차의 힘을 실감할 뿐이다.

주행 모드를 ‘스포츠(Sport)’로 바꾸는 순간조차, 이 ‘지휘실’의 평온은 깨지지 않는다. 물론 8기통 엔진은 한층 민감하게 반응하고, 가변 배기 플랩이 열리며 V8 고유의 사운드가 더 짙게 깔린다. 하지만 아델의 보컬을 위협하는 ‘소음’이 아닌, 배경에 묵직하게 깔리는 ‘베이스’처럼 존재감을 더할 뿐이다. 맹렬하게 속도를 높이는 순간에도 동승자와의 대화나 음악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 이 고요한 질주. 이 ‘묵직한 존재감’과 ‘조용한 가속력’이라는 이질적인 조합이야말로 GLS 580의 핵심이자, 벤츠가 S클래스 SUV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품격 그 자체다.

이 ‘조용한 질주’를 완성하는 것은 단연 ‘E-액티브 바디 컨트롤’이다. 노면의 요철을 스캔해 미리 대응하는 이 ‘마법의 서스펜션’은, 차체가 도로의 굴곡을 밟는 것이 아니라 그 위를 ‘떠서’ 가게 만든다. 묵직한 덩치로 이토록 경이로운 승차감을 구현하는 것. 이것이 벤츠가 말하는 기술적 ‘품격’이다.

“Let the sky fall...” 아델의 목소리가 웅장하게 실내를 감쌀 때, GLS 580은 고속의 코너에 진입하고 있었다. ‘커브(Curve)’ 모드가 활성화되자, 차체는 원심력을 거스르며 코너 안쪽으로 스스로 몸을 기울인다. 묵직한 차체가 쏠림 하나 없이 레일 위를 달리듯 코너를 감아 도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보잉 747기가 우아하게 선회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스카이폴’의 마지막 음이 사라질 때쯤, GLS 580은 목적지에 섰다. 묵직한 존재감으로 상대를 압도하지만, 정작 그 힘을 쓰는 순간에는 더없이 조용하고 우아하다. 이것은 단순한 SUV가 아니다. V8 심장을 품은 S클래스, ‘달리는 지휘실’이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