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엄하늘의 호흡은 독특하다. 질문을 던질 때마다 입을 꾹 다문 채 머릿속에 펼쳐진 우주 속 알맞은 대답을 고른다. 그렇게 신중하게 찾아낸 대답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뱉는다. 그게 엄하늘 감독만의 호흡법이다. 느릿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하다.

배우 겸 감독으로 활동 중인 엄하늘은 이미 기성 영화인들 사이 소문난 보물이다. 어느 작품에, 어떤 역할을 맡겨도 자신만의 느낌으로 내놓는다. 그런데 그게 놀라울 만큼 적재적소에 놓인다.

그래서 엄하늘을 바라보는 영화인들의 시선은 “얜 뭐지?”다. 긍정적인 의미다. 대배우의 연기력도, 조각 미남의 비주얼도 아닌데 자꾸만 들여다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대사를 내뱉는데 그게 시그니처다. 엄하늘은 자신의 고유한 호흡을 타인에게도 조용히 스며들게 한다.

그렇게 스며든 이들 중 하나는 바로 배우 이동휘다. 엄하늘과 이동휘는 독립장편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에서 만났다. 겨우 한 줄의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이었는데, 이동휘는 엄하늘에게 ‘엄’며들었다. “얜 뭐지?” 싶었던 거다.

이후 이동휘는 하정우 연출의 영화 ‘로비’에 출연하게 됐다. 이동휘는 하정우에게 엄하늘을 소개했다. 하정우도 엄하늘을 보며 “얜 뭐지?”라고 생각했다.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의 매력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로비’ 속 창욱의 사촌동생 호식이가 탄생했다.

당초 호식이는 두 장면 정도의 분량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엄하늘과 만나 생명력을 얻은 호식이는 분량이 대폭 늘어났다. 엄하늘의 말처럼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제가 살면서 OTT 시리즈 조연일 때도 3회차 이상 촬영한 적이 없거든요? 근데 10회차 넘게 촬영했어요. 정말 엄청난 기회였죠.”

이동휘와의 인연은 ‘너와 나의 5분’에서도 이어졌다. 시나리오를 본 이동휘가 무개런티로 담임 선생님 역할을 맡아줬다. 이에 대해 엄하늘 감독은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웃음을 보였다.

“영화를 못 찍을 때까지 영화를 찍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엄하늘은 연출과 배우 사이를 바쁘게 오가고 있다.

이에 대해 엄하늘은 “아직까지 저를 필요로 하는 역할이 있기 때문에 연락이 온다고 생각해요. 마다할 이유는 없어요. 그냥 제가 더 열심히 하면 되겠죠”라고 웃음을 보였다. sjay0928@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