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이서진이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평생의 스승이자 인생의 멘토였던 고(故) 이순재를 향한 마지막 인사를 건네다 목이 메었다.

28일 방송된 MBC 특집 다큐멘터리 ‘배우 이순재, 신세 많이 졌습니다’는 고인의 마지막 1년과 70년에 가까운 연기 인생을 한 편의 기록처럼 담아냈다. 내레이션은 이서진이 맡았다. 화면 속에서는 고인의 흔적이 차분히 흐르고, 녹음실 안에서는 후배의 떨리는 목소리가 겹쳤다.

이날 방송에서 제작진은 내레이션 녹음을 마친 뒤 이서진에게 마지막 인사를 부탁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여행은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끝내 슬픔을 삼키지 못한 이서진의 목소리는 화면 너머까지 떨림을 전했다. ‘꽃보다 할배’에서 할배들을 앞세우고 묵묵히 뒤를 지키던 막내 짐꾼의 마지막 배웅이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깊고 길었다. 2007년 사극 ‘이산’에서는 영조와 정조로 호흡을 맞췄고, 이후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는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을 모시는 일당백 짐꾼으로 다시 만났다. 당시 이서진은 “다시 태어나면 선생님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할 만큼 각별한 존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다큐 내레이션 참여는 그 마음을 담은 마지막 헌사에 가까웠다.

방송은 올 5월 병상에 누워 있던 이순재의 생전 모습부터 담아냈다. 소속사 대표가 “몸이 좋아지면 무엇을 하고 싶으시냐”고 묻자, 그는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건 작품밖에 없지.”

몸은 병원 침대에 묶여 있었지만, 마음과 시선은 여전히 카메라와 무대 위를 향해 있었다.

시력까지 그를 괴롭혔다. 이순재는 “지난해 10월 촬영 끝나고 올라왔더니 안 보이더라. 병원에 갔더니 왼쪽 눈은 안 보인다고 하더라”고 담담히 말했다. 왼쪽 눈은 거의 실명에 가까웠고, 오른쪽 눈도 온전히 건강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소속사 대표는 “왼쪽 눈은 안 보이고 오른쪽 눈도 100%는 아닌데도 예전과 똑같이 연기 훈련을 하셨다”며 “안 보이니까 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매니저나 저에게 대본을 크게 읽어달라고 하셨다. 읽어주는 걸 귀로 다 외우겠다고 말씀하실 때 가장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3시간 가까이 홀로 무대를 끌고 가야 하는 연극 ‘리어왕’에 도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그는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이런 역할을 맡게 된 게 너무 기쁘다”며 마치 신인 배우처럼 대사와 동선을 반복했다. 후배 배우들은 “87세에 꿈을 이뤘다고, 동료들 앞에서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지난해 말까지도 그는 현역이었다. 드라마 ‘개소리’로 2024 KBS 연기대상에서 역대 최고령 대상을 수상했다.

이순재는 지난 25일 새벽 향년 91세로 눈을 감았다. 27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영결식이 엄수됐고, 정부는 한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이번 여행은 함께하지 못했지만, 이순재가 남긴 길 위에 여전히 수많은 배우들이 뒤따라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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