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MBC ‘극한84’는 마라톤을 다루지만, 승부를 전면에 세우지 않는다.
카메라는 숫자를 쫓지 않고 사람을 따라간다. 호흡이 가빠지는 순간, 발이 멈추는 찰나, 더 이상 뛰고 싶지 않을 때의 침묵이 이 프로그램의 주된 서사다. 익숙한 스포츠 예능의 문법에서 한 발 비켜선 선택이다.
이 구조의 한가운데에는 기안84가 있다. 그는 진행자이지만, 전형적인 리더는 아니다. 앞에서 끌어당기기보다 옆에서 같이 무너진다. 완주를 독려하는 말 대신, 힘들다는 고백을 먼저 내놓는다. 그 태도가 프로그램의 온도를 결정한다. ‘극한84’가 경쟁 예능이 아니라 동행의 기록처럼 읽히는 이유다.
시청률 흐름은 이 선택이 유효했음을 보여준다. 첫 회 2%대에서 출발한 수치는 회차를 거듭하며 5%대까지 상승했다. 자극적인 장치 없이 쌓아 올린 그래프다. 화제성 중심의 급등이 아니라, 회차 누적형 반응에 가깝다.
최근 방송된 북극 마라톤 편은 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낸 회차였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출연진은 각자의 한계와 마주했다. 권화운은 선두를 달리다 순식간에 뒤처졌고, 다시 추격하며 반전을 만들었지만 결국 근육 경련이라는 벽 앞에 멈춰 섰다.
기안84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비교적 안정적인 컨디션으로 출발했지만, 빙판과 로드 구간을 지나며 체력은 급격히 소진됐다. 구토감과 갈증 속에서도 페이스를 조절하려 애쓰는 모습, 얼음을 뜯어먹으며 버티는 장면은 극적인 연출 없이도 충분히 강했다. 웃음을 섞어 상황을 넘기지만, 그 이면의 고통은 숨겨지지 않는다. ‘잘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의 얼굴이 그대로 담겼다.

강남의 서사도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 꼴찌로 출발했지만 빙판에서 의외의 강점을 보이며 추격하는 과정, 그리고 오르막에서 다시 무너지는 흐름까지. 반전은 있지만 영웅 서사는 없다. 대신 예상 가능한 실패와 그럼에도 계속되는 시도가 남는다.
‘극한84’의 성과는 포맷의 새로움보다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과장된 자막도, 감정을 강요하는 편집도 없다. 제작진은 설명하지 않고 기다린다. 그 사이 시청자는 출연자들의 호흡에 자연스럽게 동조한다. 이 느린 호흡이 오히려 현 미디어 환경에서 차별점이 됐다.
다수의 신작들이 초반 반응을 넘지 못하고 소진되는 흐름 속에서, ‘극한84’는 회차가 쌓일수록 힘을 얻고 있다. 기안84의 기존 IP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반응이다.
이 프로그램의 질문은 단순하다.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끝까지 버티는 과정이 중요한가. ‘극한84’는 후자를 택했고, 시청자는 그 선택에 응답하고 있다. 상승세의 이유는 분명하다. 진심이 앞에 섰고, 연출은 한 발 물러났다. 이 조용한 균형이 지금의 성적을 만들고 있다. khd9987@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