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는 가려도 국가는 막지 못했다
떼창으로 화답한 대만 팬들
대만-일본 우정 돋보이네

[스포츠서울 | 도쿄=박연준 기자] 비록 대만(중화민국)의 국기가 올라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도쿄돔의 스피커를 타고 대만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국제무대에서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만의 애달픈 현실과, 이를 보듬는 일본의 묘한 외교적 배려가 야구장에서 재현됐다.
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호주와 대만의 개막전. 경기 시작 전 양국 국가 연주 순서에서 이색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전광판에는 대만의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 대신 ‘차이니스 타이베이’의 오륜기가 띄워졌다. 그래도 도쿄돔 가득 울려 퍼진 국가는 대만의 공식 애국가인 ‘삼민주의가’였다.

잘 알려진 대로 대만은 양안 관계와 ‘하나의 중국’ 원칙 탓의 국제대회에서 대만이라는 국호와 국기를 사용하지 못한다. 가슴에는 ‘CHINESE TAIPEI’라는 명칭을 달고, 시상대에는 오륜기를 올려야 하는 것이 이들의 숙명이다.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국가 지위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다.
이날 도쿄돔은 달랐다. 통상 이런 경우 대만은 애국가 대신 ‘국기가’나 다른 연주곡으로 대체하곤 하지만, 이번 대회 주최 측인 일본은 대만의 공식 애국가를 틀었다. 일본과 대만의 밀착된 우호 관계가 야구장이라는 공간에서 정치적, 외교적 함의를 담아 투영된 셈이다.

국가가 시작되자 도쿄돔을 가득 메운 수만 명의 대만 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기립했다. 이들은 목이 터지라고 제창하며 타지에서 느끼는 자국에 대한 자부심과 서러움을 동시에 쏟아냈다. 만원 관중 속에서 오륜기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은 묘한 전율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안겼다.
비록 국기는 달리지 못했지만, 도쿄돔을 가득 채운 대만의 선율은 그 어떤 홈런보다 강렬하게 대만 팬들의 심장을 때렸다. 스포츠가 국경과 정치를 넘어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준, WBC 개막전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duswns0628@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