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세상엔 분명 악마적 DNA가 존재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추앙받는 건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이 겸손하게 타인을 존중하는 사례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한줌의 권력이라도 쥐면 휘두르기 마련이다. 어리고 약한 여성을 착취하려는 행위는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최근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미국 내 ‘엡스타인 파일’이나 대중의 뇌리에 깊은 상흔으로 남은 ‘N번방 사태’도 같은 맥락이다. 수법은 계속 더 악랄하고 잔혹해지고 있다. 그 사이 피해자는 살아있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ENA ‘아너: 그녀들의 법정’(이하 ‘아너’)는 끔찍한 지옥을 전면으로 다룬다. 성착취를 도구로 활용해 카르텔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층에게 저항하는 세 변호사의 연대를 그린다. 악의 축은 고위층 비밀 성매매 애플리케이션 ‘커넥트인’이다.

권력자들이 세운 이 견고한 철옹성 앞에서 극 중 세 명의 여성 변호사는 처절하게 맞선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거대한 범죄와 이를 은폐하려는 짐승의 행태는 현실 속 대형 성착취 스캔들과 맞물린다. 증거를 내세우라며 법으로 무마하려는 시도는 역겹기 그지없다.
‘아너’의 차별점은 거악과 싸우는 세 변호사가 가진 연대의 방식이다. 대학 시절 성폭행 위험을 겪은 세 친구가 20년이 넘는 세 동안 각자 변호사로 성장해 우정을 쌓았다. 이들은 흠결이 없는 영웅이 아닌, 때론 이기적이고 혹은 지나치게 자유롭거나 결핍이 분명한 존재들이다.
어줍잖은 정의를 앞세우는 대신 도덕적인 완결성을 과감히 거세하고,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지점이 흥미를 높인다. 타인에 대한 깊은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가장 인간적인 연대를 이루는 지점은 이전 여성 서사물과 궤를 달리한다.

이나영과 정은채, 이청아가 이 축을 맡았다. 이나영이 맡은 윤라영은 톡 쏘는 말로 상대의 마음을 헤집지만, 그 안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 비록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쓰더라도 지면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 과감한 시도를 꺼리지 않는다.
정은채가 연기한 강신재는 회사 대표답게 멋진 리더십으로 주위를 아우른다. 이혼을 두 번 했다는 것을 제외하곤 흠결이나 결핍이 적다. 정의로운 인물이 지겨울 수 있는데, 정은채는 미묘한 디테일로 인물의 색감을 집어넣었다. 이청아가 연기한 황현진은 갈등의 시발점이다. 가장 결핍이 심하지만, 그만큼 고통도 많이 느낀다. 친구들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또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뉘우치는 면이 인간적이다.

대체로 정의구현은 복수로 흐르기 마련이다. ‘아너’는 복수가 아닌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악을 처단해야 하는 약자의 연대다. 마지막을 앞두고 세 변호사는 ‘거악의 진실’에 다가왔다. 이들의 승리가 카타르시스로 이뤄질 수 있을까. 현실이 녹록지 않아 통쾌한 승리가 있길 기대하게 된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