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였던 순간의 선택이 부른 집착…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한 남자
이루어질 수 없는, 그렇다고 포기 못 한 사랑 이야기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같은 곳에 있지만 다른 꿈을 꾸는 것을 동상이몽(同牀異夢)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미묘한 균열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을 좇다 절망의 골짜기(기차역)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여인의 삶을 그린다. 하지만 ‘안나’를 사랑한 문유강(30)의 ‘알렉세이 브론스키’는 그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뮤지컬 ‘안나 카레리나’는 러시아 문화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을 원작에 피겨스케이팅·발레·오페라 등 현지 고유의 예술을 입힌 작품이다. 감성의 깊이를 더하는 예술적 감각에 매료돼 인물 간의 복잡한 서사에 빠져든다.
작품은 빛과 어두움의 순간을 반복적으로 그려낸다. 사랑과 이별, 믿음과 배신, 용서와 분노로 어지럽게 휘감겨 희비(喜悲)의 격차를 극적으로 벌린다. ‘안나’와 금지된 사랑을 한 ‘브론스키’를 향한 원망의 시선이 끊임없이 따라붙는 이유다.
문유강은 최근 스포츠서울을 만나 ‘안나’와의 격정적인 사랑과 마지막 순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브론스키’ 내면의 진실을 털어놨다.
◇ 진심과 거짓 사이…두 여자에게 감긴 ‘브론스키’
‘브로스키’를 연기하는 문유강의 가슴에는 ‘안나’와 ‘키티 세르바츠카야’ 두 여인이 있다. ‘키티’는 약혼을 앞두고 ‘안나’와 떠나버린 ‘브론스키’에게 상처받은 여인이다.
막장 드라마의 원흉으로 보이는 ‘브론스키’를 문유강은 연민을 담아 애석하게 표현했다. 그는 “‘안나’를 만나기 전 ‘브론스키’의 삶은 어땠을지 상상했다. 도대체 어떤 환경에 살던 사람이었기에 갑작스럽게 사랑의 대상이 바뀔 수 있을지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문유강은 ‘안나’를 만나면서 변화되는 ‘브론스키’를 그렸다. 그는 “‘키티’와의 결혼도 주변의 요구로 인해 원치 않은 미래였지 않을까? 안정의 굴레 속에서 자기를 속이고 있었을 것”이라며 “순간의 선택으로 넘어졌지만, 정신 차려보니 이는 ‘Fall in love(사랑에 빠지다)’였다. ‘안나’의 아름다움과 글을 통해 마주한 진짜 내 모습에 타당성과 정당성이 부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예술작품서 돌아보는 현실적 사랑
문유강은 ‘브론스키’의 인생을 ‘안나’와의 만남 전후로 나눴다. ‘브론스키’를 연기하는 그 역시 첫눈에 반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을 여정을 되돌아봤다. 그는 “이 또한 새로운 안정감”이라고 밝혔다.
금지된 사랑에도 포기할 수 없는 배경이 담겨있다는 것. 문유강은 “금지된 사랑의 행위에는 좋지 않은 결말이 따를 때가 많다. 그런데 사람은 심리적으로 금지된 어떤 무언가에 끌린다. 이를 넘어섰을 때 또다시 찾아오는 울타리의 안정감을 바라는 마음 때문은 아닌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브론스키’는 마치 세상에 한 남자밖에 없는 것 마냥 살아가는 ‘안나’에게서 점점 멀어진다. 문유강은 무대 위 이야기를 현실적인 시선으로 냉정하게 바라봤다.
문유강은 “‘브론스키’는 결단 있게 사랑에 뛰어들었지만, 시대상 사회적 시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엄청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떠났는데, 이후 ‘안나’의 집착은 ‘브론스키’를 옥죘다. 결국 극장 난동에서 무너졌다”라며 “삶의 걸림돌로 작용할까 두려움이 생겼다. 결국 이들의 사랑은 실패로 끝난다”라고 ‘안나’의 아집에 지친 ‘브론스키’를 대변했다.
이어 “안타깝지만 이야기의 수순이 잔인한 현실 같다. 가지 말라고 했던 극장에서 만난 ‘안나’에게 엄격하고 때론 경고한다. ‘브론스키’ 자신에 대한 걱정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라면서도 “‘안나’를 끊어낸 것은 아니다. 원대한 사랑을 가진 ‘안나’에게 ‘브론스키’의 질책이 큰 데미지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는 여러 인물의 서사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1800쪽의 방대한 소설을 150분에 담기에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문유강은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면 극의 재미를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막 엔딩은 ‘안나’의 결단이고, 2막은 인물 관계의 변화”라면서 “‘MC’와 ‘스티바’, 앙상블 등의 노래와 군무를 통해 전개되는 상황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래도 어렵게 느껴진다면, 앙상블의 군무를 통해 다음 등장인물의 구조적 변화를 살펴보는 것을 추천한다”라고 전했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위험한 사랑 이야기 ‘안나 카레리나’는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다. gioia@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