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누구보다 떳떳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도덕성에 흠결이 없다면, 보통 올바른 목적을 위해 정당한 방식을 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ENA ‘아너 : 그녀들의 법정’ 속 이나영이 연기한 윤라영은 승리를 위해 정당하지 않은 방법도 거리낌 없이 택한다. 그 과정에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없다.
덕분에 인물은 입체적이다. 양면적인 성향이 자연스럽게 묘사됐다. 괴리감이 있는 두 패턴을 연결하는 건 ‘불안’이다. 대학 시절 성폭행을 당할 뻔한 충격 때문에 늘 불안에 떨며 살고, 전체를 봐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방에서 편히 잠을 청하지도 못한다. 이 복잡한 내면의 인물이 배우 이나영을 만나 매력적으로 피어났다.

이나영은 최근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 이입이 잘되는 것 같다. 윤라영도 정의로움 때문에 악과 맞선다기보단, 생존을 위해 아픔을 치유하려고 싸웠다고 생각한다”며 “잔다르크가 아니다. 상처와 직면하고 버티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윤라영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 강신재(정은채 분)와 황현진(이청아 분)이 있다. 셋은 과거 라영이 겪은 위기를 함께 모면했다. 그 아픔을 공범과 연대란 테두리 안에서 공유하는 친구 이상의 관계다. 세 사람은 10대, 20대 약자들을 도구로 삼아 권력자들의 성욕을 해소하는 비밀 애플리케이션 ‘커넥트인’의 카르텔과 치열하게 맞선다.
“드라마가 성폭력이 주요 소재이긴 하지만, 꼭 그것만을 은유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부당하게 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연대로 봤어요. 그 상처를 기다려주는 방식으로 풀어냈던 것 같아요. 마지막엔 배우들 눈도 못 봤어요. 뭐가 그리 슬펐는지, 눈만 보면 터지더라고요.”

윤라영의 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축은 극 후반부에 밝혀지는 ‘입양 딸’의 존재다. 이나영은 시청자에게 반전을 주기 위해 현장에서 철저히 감정을 억제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시나리오를 보고 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연기가 복잡해질까 봐 의식하지 않으려 했어요. 딸을 대할 때 모성애가 겉으로 드러나면 시청자가 눈치채고 재미가 없어지니까요. 나중에 면회실 장면에서 ‘나는 그냥 너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할 때도 일반적인 모성애가 아닌 담백하게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접근했어요.”
이러한 세밀한 감정선은 세 배우의 연대가 맞물리며 더욱 빛을 발했다. 단단한 리더십을 가진 강신재, 불안에 떨면서도 올바른 길로 향하는 윤라영, 정서적인 면에서 빈틈을 채우는 황현진에게는 각자의 결핍이 분명하다. 약한 면이 분명한 세 여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지점에서 묵직한 쾌감이 온다.
“세 배우 다 조용조용한 편이고 낯가림도 있어요. 다행히 세 명이 모이는 장면이 촬영 한 달 뒤부터 시작돼서, 이미 다 캐릭터가 돼서 나타났죠. 모두가 자기 욕망 없이 작품을 잘 만드는 데만 집중하더라고요. 저도 다른 배우 컷에 제 얼굴이 걸리지 않을 때 더 열심히 연기했던 것 같아요.”

때때로 작품에 출연해 대중과 만나는 이나영과 반대로, 남편 원빈은 영화 ‘아저씨’(2010) 이후로 긴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 이나영이 남편의 속내를 대신 전하는 것으로 팬들의 궁금증이 해소되는 상황이다.
“남편도 연기에 대한 욕심이 있어요. 같이 좋은 작품을 보면 ‘우리가 저거 했어야 했는데’라는 말도 해요. 늘 제가 대신 얘기해서 좀 그렇긴 하지만, 갈증은 강하게 있어요. 이번 ‘아너’도 관심이 많았어요. 시나리오 초반 단계에서 고민도 함께 해주고, 중간중간 스포일러를 알아맞히려고 떠보기도 하더라고요. 궁금해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계속 작품을 보고 있고 욕심이 있으니, 언젠가 하지 않을까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