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예전 히어로는 특별한 존재였다. 하늘을 날고, 괴력을 쓰고, 세상을 구하는 인물이었다. 능력은 곧 운명이었다. 영웅은 대체로 고독했다.

최근 K드라마 속 초능력자는 다르다. 완벽하지 않다. 거창하지도 않다. 동네에서 살고, 가족을 지키고, 돈 걱정을 한다. 어설프게 뭉친다. 초능력은 더 이상 영웅의 상징만이 아니다. 생활을 버티는 방식이자 관계를 지키는 도구가 됐다.

넷플릭스 ‘원더풀스’는 이 흐름을 코미디로 밀어붙인다. 이 작품은 1999년 세기말, 뜻밖의 사건으로 초능력을 얻은 동네 사람들이 빌런에 맞서는 이야기다.

‘원더풀스’의 초능력자는 멋있게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은 준비된 영웅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능력을 얻고, 그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른다. 초능력은 위엄보다 당황을 먼저 만든다. 세상을 구해야 하는데, 정작 인물들은 세상을 구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은 박은빈이 연기한 은채니다. 은채니는 해성시에서 가장 잘나가는 ‘큰손식당’의 손녀로,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린 뒤 어느 날 갑자기 순간 이동 초능력을 얻게 되는 인물이다.

디즈니+ ‘무빙’은 한국형 초능력물의 감정적 토대를 먼저 보여준 작품이다. 시즌1은 초능력자를 국가기관의 비밀 병기처럼만 그리지 않았다. 부모와 자식, 부부, 친구의 관계 안에서 능력을 풀었다.

날 수 있는 인물도 결국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였고, 괴력을 가진 인물도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이었다. 히어로물의 외형 안에 가족극과 멜로, 성장담을 넣은 방식이었다.

그 결과 ‘무빙2’ 제작도 공식화됐다. 시즌1이 가족형 히어로물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시즌2는 그 세계관을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초능력자 개인의 사연, 국가 권력의 통제, 세대 간 능력의 계승, 새로운 인물의 등장까지 확장 여지가 크다.

넷플릭스 ‘캐셔로’는 여기에 더 생활 밀착형 감각을 붙인다. 이 작품은 초능력을 얻게 된 평범한 남자 강상웅(이준호 분)의 이야기다. 다만 능력을 쓸 때마다 지갑 속 돈이 줄어든다.

‘캐셔로’의 설정은 한국형 초능력물의 현재를 잘 보여준다. 초능력은 강력하지만 공짜가 아니다. 능력을 쓸수록 돈이 사라진다. 영웅이 되는 일에도 생활비가 든다.

세상을 구하는 문제보다 먼저 지갑 사정이 걸린다. 이 작품의 재미는 바로 그 짠내에서 나온다. 능력이 생겼는데도 마음껏 쓸 수 없는 인물. 누군가를 구하려면 자기 돈을 써야 하는 인물. 초능력은 판타지인데, 조건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이제 K초능력물의 핵심은 능력의 스펙이 아니다. 인물의 사정이다. 누가 더 강한가보다 왜 숨기고 살았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능력을 가졌는가보다 그 능력 때문에 무엇을 잃고,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무빙’의 눈물도, ‘원더풀스’의 웃음도, ‘캐셔로’의 짠내도 여기서 나온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