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학교가 다시 사건의 무대가 됐다.

한때 드라마 속 학교는 청춘의 공간이었다. 첫사랑이 시작되고, 친구와 싸우고, 선생님에게 위로받는 곳이었다. 입시와 경쟁이 있어도 결국 성장담의 배경에 가까웠다.

최근 학교는 다르게 쓰인다. 더 이상 풋풋한 감정만 남지 않는다. 저주, 좀비, 교권 붕괴, 학교폭력, 비밀스러운 로맨스까지 들어온다. 학교는 청춘물의 배경을 넘어 장르물이 가장 빠르게 사건을 터뜨릴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넷플릭스 ‘기리고’는 이 흐름을 보여주는 최근 사례다. 2026년 공개된 이 작품은 소원을 이뤄주는 애플리케이션 ‘기리고’의 저주로 죽음을 예고받은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기리고’의 학교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학생들은 교실 안에서 공부만 하지 않는다.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저주와 연결되고, 친구의 죽음을 예감하며, 살아남기 위해 움직인다. 학원물의 외형은 유지되지만, 내부는 오컬트 호러에 가깝다. 이 작품에서 학교는 성장의 배경이 아니라 공포가 침투하는 생활 공간이다.

이 설정이 무서운 이유는 익숙함 때문이다. 학교는 누구나 아는 공간이다. 교실, 복도, 사물함, 급식실, 운동장은 낯설지 않다. 그래서 공포가 들어왔을 때 더 빠르게 반응한다. 귀신이 폐가에 나오는 것보다, 학생들이 매일 앉는 교실에 저주가 들어올 때 감정의 거리는 훨씬 가까워진다.

시즌2 제작을 확정한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시즌1은 효산고라는 학교 안에 좀비 바이러스를 밀어 넣었다. 학교는 순식간에 생존의 전장이 됐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강했던 이유도 학교라는 공간성에 있었다. 교실은 피난처가 되고, 급식실은 전장으로 변한다. 방송실과 옥상은 생존의 거점이 됐다.

학생들은 어른의 보호를 기다리지만, 결국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학교라는 닫힌 공간은 좀비물의 긴장감을 키운다. 동시에 청소년들이 사회의 방치 속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쿠팡플레이 ‘로맨스의 절댓값’은 다른 방식으로 학교를 활용한다. 낮에는 평범한 여고생, 밤에는 로맨스 소설 작가인 의주가 학교에 새로 부임한 꽃미남 선생님들과 얽히는 하이틴 로맨스 코미디다.

‘로맨스의 절댓값’은 공포나 좀비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도 학교를 더 이상 순수한 청춘의 공간으로만 쓰지 않는다. 학교는 학생의 현실과 상상이 부딪히는 무대가 된다. 낮에는 조용한 학생이지만, 밤에는 저돌적인 로맨스 작가가 되는 인물의 이중생활이 학교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교실과 교무실은 현실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소설적 판타지가 번지는 공간이 된다.

이 세 작품은 결이 다르다. ‘기리고’는 학교에 오컬트 호러를 들이고,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생존극을 밀어 넣는다. ‘로맨스의 절댓값’은 하이틴 로맨스와 창작 판타지를 학교 안에서 굴린다. 하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학교는 더 이상 장르의 부속 배경이 아니다. 사건을 발생시키는 핵심 장치다.

학교가 장르물에 잘 맞는 이유는 구조가 선명하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사, 선배와 후배, 친구와 따돌림, 규칙과 위반, 보호와 방치가 한 공간 안에 있다. 권력관계가 이미 짜여 있고, 도망칠 수 없는 하루가 반복된다. 여기에 공포, 재난, 로맨스, 범죄, 코미디를 넣으면 갈등은 빠르게 발생한다.

또 학교는 시청자의 기억과 직접 연결된다. 누구나 교실의 공기, 복도의 소리, 시험 전 긴장, 친구 관계의 불안을 안다. 그래서 학교 배경 장르물은 별도의 설명 없이 감정을 불러온다. 낯선 사건을 익숙한 공간에 심는 순간, 시청자는 곧바로 들어간다. 지금 드라마 속 학교는 가장 익숙한 얼굴을 한, 가장 위험한 무대다. khd998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