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촌스럽다. 유치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진다. 영화 ‘와일드 씽’은 세기말 감성을 한껏 끌어안은 채 웃음과 뭉클함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정신없이 웃다가도 어느 순간 한때 뜨겁게 무언가를 사랑했던 그 시절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와일드 씽’은 가요계를 휩쓸었던 3인조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이 표절 논란으로 하루아침에 해체된 뒤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재기의 기회를 붙잡기 위해 무모한 도전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오는 6월 3일 개봉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을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으로 단숨에 데려간다. 화면 가득 번쩍이는 조명과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그래픽 자막, 어딘가 촌스러운 의상까지 당시 음악방송 특유의 감성을 디테일하게 구현해냈다.

트라이앵글의 데뷔 무대는 추억 버튼을 제대로 누른다.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음악방송 순위 하나에 울고 웃던 시절의 공기가 영화 곳곳에 찐득하게 배어 있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단순히 레트로 감성에만 기대지 않는다. 소위 ‘한물간’ 사람들을 앞세워 한때 누구보다 빛났지만 지금은 현실에 치여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특히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 우당탕탕 흘러가는 트라이앵글의 과정은 짠내와 응원을 동시에 자아낸다.
이윽고 트라이앵글이 다시 무대 위에 서는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뭉클하다. 어느새 관객 역시 이들의 재기를 한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다소 클리셰적인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아는 맛’이 주는 감동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트라이앵글 멤버들이 있다. 현우 역의 강동원은 자신을 ‘댄싱머신’이라 소개하며 거침없이 헤드스핀을 선보이고, 극 내향인 이미지의 엄태구는 대사의 대부분을 랩으로 쏟아내는 폭풍 래퍼 상구로 변신했다. 여기에 홍일점이자 센터 도미 역의 박지현까지 더해져 트라이앵글은 엇박자 같으면서도 묘하게 완벽한 팀워크를 완성한다. 실제 활동했던 그룹처럼 자연스러운 케미가 살아 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진짜 ‘킥’은 단연 오정세다. ‘39주 연속 2위 비운의 발라드 가수’ 최성곤 역을 맡은 그는 등장만으로도 스크린을 장악한다. 장발 머리로 얼굴 절반을 가린 채 그윽한 눈빛으로 “네가 좋아”를 반복하는 모습은 어느 순간 ‘곤’며들게 만든다.
후반부 오정세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사실상 독무대에 가깝다. 처절할 정도로 웃기고, 또 웃길 정도로 절실하다. 얼마나 성공하고 싶은지 감도 잡히지 않을 정도다. 비록 극 중에서는 늘 2위일지 몰라도, 관객의 마음속에선 단연 1위다.
사실 ‘와일드 씽’은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결코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끝까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조금 모자라고, 철없고, 허세도 가득하지만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인 사람들이다.
‘와일드 씽’은 누군가의 흑역사 같기도 하고, 끝내 포기하지 못한 꿈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때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했던 ‘덕질의 기억’을 제대로 건드린다. 밤새 노래를 듣고, 무대 영상을 돌려보며 괜히 혼자 벅차오르던 그 시절의 감정들이다.
촌스럽고 유치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사랑스러운 ‘와일드 씽’이 관객들에게 어떤 웃음과 여운을 남길지 기대를 모은다. sjay0928@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