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솔트레이크시티=김용일 기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내달 개막하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이후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정 회장은 29일 성명을 내고 “이번 월드컵 이후 축구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면서 “축구대표팀이 본선에서 성과를 내도록 지원하는 게 회장으로 마지막 소임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축구협회는 ‘지난해 2월 85.6%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4선에 성공한 정 회장의 이와 같은 결정은 월드컵 대표팀에 대한 축구 팬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간곡히 당부하기 위해 이뤄졌다’고 했다. 또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중장기적 비전 수립과 이행에 매진해야 할 협회가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숙고 끝에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 2013년 제52대 축구협회장에 취임하며 13년간 한국 축구를 이끌어온 정 회장은 오는 7월 20일(한국시간) 폐막하는 북중미 월드컵 이후 사직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월드컵을 앞둔 홍명보호에도 정 회장의 사퇴 결심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 정 회장이 성명을 내기 직전에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시간으로 28일 늦은 밤이었다. 홍명보 감독을 비롯해 선수단 모두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다. 급작스러운 발표해 모두 당황했고, 홍 감독은 스태프와 긴급 미팅을 통해 현 상황을 돌아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트리니다드토바고와 월드컵 최종 모의고사 1차전을 앞두고 열리는 기자회견에서 정 회장 사퇴와 관련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사흘 전 정례 임원 회의를 정상적으로 주재한 정 회장의 사퇴 표명은 축구협회 주요 실무진도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정 회장이 평소 돌발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성향이어서 더욱더 놀라워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정 회장 주요 측근에 따르면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자진 사퇴에 관한 뜻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난 3선 임기 때 축구협회 행정 난맥상을 두고 축구 팬은 물론, 정치계와 법조계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은 정 회장은 월드컵 결과와 맞물려 거취 얘기까지 나오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지난 2024년 11월 축구협회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정 회장 등 주요 임원에 대해 자격정지 이상 중징계를 요구한 것과 관련해 축구협회가 불복을 선언, 법원에 취소 청구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신청으로 맞불을 놨다가 지난달 23일 본안 소송 1심에서 패소한 게 치명적이었다. 4선에 성공한 뒤 1년이 갓 지난 시기였을 뿐더러 월드컵을 한 달여 앞두고 정상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문체부는 위르겐 클린스만, 홍명보 국가대표 감독 선임 절차 문제부터 정 회장이 4선에 도전하며 최대 치적으로 내세운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코리아 풋볼파크) 건립 사업 업무 처리 등을 지적사항으로 뒀다. 이중 문체부는 감사 결과 발표에서 홍 감독이 사령탑 선임 과정에 관여하거나 특혜받은 건 없다면서 절차적 문제로 사실상 피해자라고 규정했으나 여전히 민심은 정 회장과 홍 감독을 동일 선상에 두고 비판, 축구대표팀 전체가 성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정 회장의 마지막 결자해지 기회로 보기도 했다. 1심 패소에 대해 무리한 항소보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미래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는 견해였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지난 6일 항소 결정을 내리면서 더욱더 곱지 않은 시선이 따랐다. 결국 항소 결정 23일 만에 자진 사퇴 카드를 꺼내면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꼴이 됐다.

한 고위 관계자는 “정 회장이 외부의 비난이나 압력은 향후 비전을 통해 극복해보려고 했지만, 월드컵이 임박해서까지 자신과 협회 행정으로 인해 대표팀이 응원을 못 받는 걸 가장 큰 부담으로 여겼다. (개막을 앞두고) 코치진과 선수단이 힘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이 무엇인가 굉장히 고민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성명에서 “축구협회를 운영하는 동안 여러 가지 논란과 비판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은 제 부덕의 소치”라며 “대회 기간 대표팀에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정 회장은 재임 기간 디비전 시스템 구축, 파트너사와 중계사 장기 계약을 통한 재정 안정화,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충청남도 천안시에 코리아 풋볼파크 건립 등 한국 축구의 중장기적 비전을 꾀하는 데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3선 이후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의 절차적 논란을 비롯해 승부조작 축구 기습 사면 시도 등으로 뭇매를 맞았다.

축구협회는 2029년까지 임기인 정 회장이 월드컵 이후 물러나기로 하면서 새 회장을 다시 뽑아야 한다. 정관에 따르면 회장이 궐위된 경우 부회장 선임 시 정한 순서(정한 순서가 없을 경우 부회장 중 연장자 순)에 따라 대한체육회의 인준을 받아 직무를 대행한다. 잔여임기가 1년 이상인 경우엔 60일 이내 회장을 새로 선출해야 한다.

축구협회는 정 회장이 사직서를 정식으로 제출한 뒤 향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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