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대형 상업영화의 진짜 재미 중 하나는 예상치 못한 신예 배우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전지현, 구교환 등 화려한 배우들이 포진한 ‘군체’ 속에서도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인물이 있다. 왕따 소녀 역을 맡은 이담희다. 짧지 않은 존재감과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차세대 기대주 탄생을 알렸다.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에서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과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의 새로운 K좀비 시리즈로,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공식 초청되며 화제를 모았다.
대규모 재난과 액션, 화려한 캐스팅이 돋보이는 작품 속에서 이담희가 그려낸 10대 소녀 소은은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극한상황 속 한줄기의 인류애를 담당했다. 소은은 학교에서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온 피해자다. 그러나 감염 사태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괴롭혔던 일진 소녀 나윤(채서은 분)를 외면하지 않는다.

보통의 재난 영화라면 복수나 응징으로 이어질 법한 설정이다. 그러나 이담희가 연기한 소은은 자신을 괴롭혔던 상대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기꺼이 손을 내민다. 또한 일진 소녀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강단을 보여줬다.
특히 통제실로 향하던 중 주차장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영화의 대표적인 긴장감 넘치는 시퀀스로 꼽힌다. 감염자들의 위협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 위험에 빠진 나윤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모습은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동시에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캐릭터의 본질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담희의 연기다. 급박한 재난 상황 속에서도 단단한 10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내면에 감춰진 상처를 짐작하게 한다. 따돌림 피해자로서의 아픔과 분노, 그리고 상대를 향한 연민이 공존하는 감정을 섬세하게 쌓아 올린다. 신예 배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안정적인 연기력이다.

덕분에 이담희 표 소은은 단순히 생존자 무리의 일원이 아니라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대변하는 존재다. 그동안 연상호 감독은 작품을 통해 꾸준히 휴머니즘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부산행’이 이기심과 희생을 이야기했고, ‘반도’가 폐허 속에서도 남아 있는 희망을 그렸다면, ‘군체’ 속 이담희의 캐릭터는 혐오와 폭력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인간애를 상징한다. 생존자 무리의 리더 권세정(전지현 분)이 외부적인 강인함을 보여준다면, 이담희의 인물은 내면의 단단함으로 작품의 중심을 지탱한다.
사실 이담희의 가능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담희는 지난 2021년 웹드라마 ‘무물쭈물’로 데뷔한 뒤 단편영화 ‘두보’ ‘미희처럼’ ‘옷장에서 생긴 일’ ‘바람직한 편견’ 등에 출연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특히 ‘바람직한 편견’으로 지난해 제17회 대단한 단편영화제 대단한 배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지난해 MBC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얼굴을 알렸다.
이번 ‘군체’는 이담희에게 가장 큰 전환점이 될 작품으로 보인다. 대작 상업영화 속에서도 자신만의 존재감을 증명했고,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화려한 액션이나 자극적인 설정보다 인물의 감정을 통해 이야기를 완성하는 배우라는 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이담희는 하반기 방송 예정인 tvN 새 드라마 ‘최애의 사원’와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을 통해 다시 한번 시청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작품마다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 현실적인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이담희의 연기는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있다. ‘군체’가 발견한 가장 반가운 수확 중 하나가 바로 배우 이담희다. sjay0928@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