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공 들인 탑이 허탈하게 무너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은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던 32강 진출이라는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한 처참한 성적. 홍명보 감독은 사퇴문을 읽었다. 12년 전인 2014년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브라질 대회와 비교하면 준비는 훨씬 잘된 편이다. 당시엔 선수 건강, 일정 관리 등을 비롯해 상대 분석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실패의 원인이었다. 알제리 경기 스타일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준비가 미약했다. 홍 감독은 사령탑으로 월드컵 경험이 없었고, 대비 기간이 짧았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번엔 달랐다. 고지대 적응을 위해 마련한 사전 캠프에서 베이스캠프로 이어지는 훈련 과정이 순조로웠다. 대회 전 A매치에서 부상자가 발생했으나 훈련 파트너를 최종 엔트리에 올리는 자연스러운 바통 터치까지 이뤄냈다.

조별리그 1, 2차전도 계획에서 크게 틀어지지 않았다.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다수인 체코를 이겼고, 개최국이자 월드컵 8강 전력인 멕시코를 상대로 호각세로 싸웠다. 치명적 실수가 아니었다면 승점 획득도 가능한 경기였다.

최약체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3차전 경기 내용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전반전부터 선수의 발이 무거워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특히 공격진에서는 이강인만 고군분투했을 뿐, 누구 하나 제 몫을 하지 못했다. ‘미스터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경기다.

결과적으로 손흥민을 선발진에서 제외한 승부수가 한국 축구의 명운을 바꾼 악수가 됐다. 1, 2차전에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한 손흥민을 후반에 투입하겠다는 홍 감독의 작전은 통하지 않았다. 이 용병술이 성공하려면 오현규가 전반전에 존재감을 보이는 전제가 필요했는데 충촉되지 않았다.

이번 대회를 보면 슈퍼스타를 살리는 형태로 팀 조직을 만든 나라가 있다.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 모하메드 살라의 이집트 등이다. 베테랑이 있는 팀은 이들이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나이가 들었지만 상대가 부담스러워하는 점을 이용해 효과를 노린다는 접근법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에겐 손흥민이 같은 존재인데 홍 감독의 접근법은 달랐다. 손흥민을 ‘평범한 한 명(One of them)’으로 여긴 인상이 강하다. 손흥민의 능력을 극대화기보다 홍 감독이 구축한 팀 전술이나 전략에 손흥민이 맞춰야 하는 구조였다. 남아공전 선발진 제외도 같은 맥락이다. 통했다면 토너먼트 라운드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지나, 실패할 경우 리스크가 너무 큰 결단이었다. 상대가 느낄 손흥민의 위압감을 간과한 대가는 혹독했다. 그 선택 하나에 공들여 잘 쌓은 탑이 기둥까지 무너진 셈이다.

캠프서부터 순항하던 팀 분위기를 바꾼 외적 변수로는 기자단의 손흥민 ‘병역 조롱’ 발언을 들 수 있다. 체코전을 앞둔 7일 일부 취재진이 손흥민을 비롯한 선수의 병역 혜택을 조롱하는 듯한 말을 했다. 이 음성이 유튜브를 통해 고스란히 대중에 전달됐다. 선수도 인지했고 인터뷰 보이콧에 나섰다. 이후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선수단 내 견해 차가 발생, 어색한 기류가 흐른 것으로 알려졌다. 남아공전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1, 2차전과 전혀 다른 경기력을 떠올리면 설득력이 있다.

남아공전을 잘 치러 조 2위로 32강에 진출했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까.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지만 여론은 긍정적으로 돌아섰을 가능성이 크다. 현실은 상상했던 것과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대표팀은 짐을 쌌다. 홍 감독은 12년 전과 다름없이 불명예 퇴진했다. 과정은 달랐지만 결과는 과거에 본 그림 그대로다. 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