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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은메달도 소중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죠.”
쇼트트랙은 양궁 태권도와 함께 국내 선발전이 올림픽 메달보다 더 어려운 종목으로 꼽힌다. 그런 쇼트트랙에서 유일하게 올림픽 3회 출전 기록을 세운 이가 있다. 바로 12일 링크와 작별하고 지도자로 새출발한 이호석(29.고양시청)이다. 2006 토리노 올림픽과 2010 밴쿠버 올림픽에 이어 지난 해 소치 올림픽까지. 그는 매번 극심한 경쟁을 이겨내며 한국 쇼트트랙 역사를 썼다. 하지만 그에겐 항상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었다. ‘쇼트트랙의 영원한 2인자’가 바로 그 것이다.
3차례 올림픽에서 목에 건 메달은 금메달 하나와 은메달 4개. 그나마 금메달은 토리노 올림픽에서 단체전인 5000m 계주를 통해 따낸 것이었다. 토리노 대회에선 ‘황제’ 안현수(3관왕)에 밀렸고, 밴쿠버 대회에선 ‘혜성’ 이정수(2관왕)가 나타났다. 선수 생활 아쉬움이 어찌 없을까. 하지만 그는 “2인자가 어딘가요?”라며 싱긋 웃고는 “올림픽 3회 출전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토리노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관왕 진선유와 함께 고양어울림누리 빙상장에서 지도자로 새출발한다. “8살부터 22년간 신었던 스케이트화를 벗는다는 게 실감나질 않는다”는 그는 “잘 보이진 않았겠지만 쇼트트랙 하나는 열심히 했던 선수로 사람들 기억에 남고 싶다”며 ‘지도자 인생 금메달’을 다짐했다.
-안현수나 샤를 아믈랭(캐나다)은 30살 넘어서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평창 올림픽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은 것 아닌가. 현수 형이나 아믈랭은 워낙 뛰어나서 어느 정도 관리만 되면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선수들이다. 사실 국내엔 잘 타는 후배들이 많다. 내 실력은 그렇고, 반면 꿈나무들은 잘 크고.
-올림픽을 3차례 출전했지만 사람들은 ‘이호석’하면 ‘쇼트트랙 2인자’로 기억한다.
2인자도 되기가 어렵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22년간 술.담배 등 나쁜 것은 안 하면서 운동에만 전념했다. 물론 어릴 땐 ‘2인자’ 타이틀이 굉장히 아쉬웠다. 밴쿠버 올림픽 도중 그런 마음이 바뀌었다. 사실 밴쿠버 대회에선 개인전 금메달 욕심이 있었다. 토리노 대회를 치르면서 사람들은 1등만 알아주는 것 같았다. 그러다 1500m 결승 마지막에 나와 성시백이 넘어져 난 실격 당하고 성시백은 은메달을 놓친 일이 있었다(당시 한국은 이정수와 성시백 이호석이 1.2.3위를 달려 한국 쇼트트랙 사상 최초로 단일 종목 금.은.동메달 싹쓸이를 이룰 뻔 했으나 그 사건으로 인해 이정수만 금메달을 땄다). 이후 생각이 변했다. ‘금메달도 중요하지만 올림픽 메달도 소중하다. 내가 너무 금메달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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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한 일도 있었다. 토리노 올림픽 전후 ‘파벌 논란’이 그랬고, 밴쿠버 올림픽 실격도 그랬다. 악플도 달렸는데.
내가 잘못하고 실수한 것을 비판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악플을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다. 억울한 것, 해명하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해명을 해도 안 좋게 보는 분들이 있으니까 언젠가부터 내 할 일만 하게 됐다.
-이호석에게 안현수는 어떤 존재인가.
불과 한 살 위 형이지만 롤모델이었다. 스케이팅이 워낙 좋아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 이기고 싶은 라이벌 의식은 컸지만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현수 형과는 중.고교 때 같이 운동했다. 현수 형과의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PC방도 같이 다니고, 현수 형 집에도 자주 놀러갔다. 얼마 전에도 “지도자로 잘 되길 바란다. 후배들 열심히 가르쳐달라”며 날 격려해줬다.
-한국 쇼트트랙, 특히 남자는 예전 같지 않다. 3년 뒤 평창 올림픽도 치러야 하는데.
다른 나라 선수들이 좋아져 평준화가 됐다. 지도자를 하는 나도 연구할 부분이다. 그러나 한국이 쇼트트랙이 강국이니까 평창에선 분명히 제 2의 안현수, 제2의 이정수가 나오지 않을까. (제2의 이호석은?)그래도 금메달이, 아무래도 낫다.
김현기기자 silv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