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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기자 출신으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스포츠라이터 레너드 코페트는 올스타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선수에게 올스타로 뽑혔다는 명예는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더욱 좋은 것은 올스타로 뽑힌 다음에 올스타전이 비로 취소되는 것이다.”
리그 전체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대표한다는 것은 보통 영광이 아니다. 그러나 올스타전은 승부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벤트일 뿐이다. 몸이 재산인 프로 선수에게 올스타전 출전은 얻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다. ‘진짜’ 승부에서처럼 치열한 플레이를 펼치지는 않지만 올스타전 역시 경기임에는 틀림없어 부상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올스타전에서 다쳐 페넌트레이스에서, 그리고 포스트시즌에 소속팀에 기여할 수 없다면 선수로서의 가치는 크게 떨어진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사상 최악의 부상은 1970년에 나왔다. 그해 신시내티에서 열린 올스타전은 9회까지 승부가 나지 않았고 연장으로 이어졌다. 내셔널리그의 피트 로즈는 연장 12회 말 2사후 안타를 치고 출루했다. 후속 안타로 2루까지 간 그는 그 다음 타자의 안타 때 3루를 돌아 홈으로 돌진했다. 모두들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상대 포수 레이 포시가 이미 손에 공을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로즈는 그대로 포수를 향해 몸을 날리며 충돌을 감행했고, 결승점을 뽑았다. 큰 충격을 받은 포시는 쇄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고 남은 시즌을 날려야 했다. “올스타전에서 그렇게 위험한 플레이를 할 필요가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자 로즈는 “축제라고 하더라도 승부는 승부다.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1941년 신시내티에서 태어난 로즈는 1963년 신시내티 레즈 선수로 데뷔한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24년 동안 활약하며 통산 4256안타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최다 안타와 함께 허슬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로즈는 신시내티 감독이었던 1989년 야구 도박을 한 혐의로 영구 제명됐다. 통산 3000안타가 기준이 되는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각종 공식 행사에도 초청받지 못했다.
그런 로즈가 지난 15일(한국시간) 열린 2015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모습을 나타냈다. 45년 전처럼 자신의 고향에서 열린 올스타전이었다. 메이저리그는 이번 올스타전을 앞두고 인터넷 팬 투표를 통해 각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뽑았고, 경기에 앞서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로즈가 신시내티를 대표하는 4명 가운데 포함된 것이다. 비록 로즈가 메이저리그에서 퇴출된 처지지만 이번 올스타전이 신시내티의 홈에서 열리는 터라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가 그의 행사 참여를 허락했다. 로즈는 자신의 이름이 발표된 뒤 만원 관중이 기립 박수를 보내자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 인사했다.
인터넷 투표 결과와 올스타전에서의 갈채가 말해주듯 로즈에 대한 신시내티 팬들의 사랑은 여전하다. 위대한 업적은 중대한 과오마저도 덮을 수 있을까. 1919년 ‘블랙삭스 스캔들’로 영구 추방된 조 잭슨은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스캔들에 터졌을 때 법원은 잭슨을 비롯한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 여덟 명은의 승부 조작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케네소 랜디스 커미셔너는 이들을 영구 추방했다. 1999년 하원이 메이저리그에 잭슨의 복권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음에도 당시 커미셔너였던 버드 셀릭은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는 제명된 상태다. 아무리 뛰어난 성취도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을 되돌리기는 그만큼 힘들다. 로즈의 복권을 원하는 이들은 그에게 내려진 징계가 너무 무거웠으며 그가 이룬 업적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올스타전에 로즈가 등장하면서 그의 복권과 명예의 전당 입성 문제가 다시 관심을 끌게 됐다.
체육부 선임기자 bukr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