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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효원 대중문화부장]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각이 보인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1위에 붙박이장처럼 자리하고 있던 책은 일본 심리서 ‘미움받을 용기’였다. 미움 받더라도 용기내서 하고싶은 걸 하라는 의미. 최근 예스24 1월 2주차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미움받을 용기’를 제치고 심리학자 김정운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21세기북스)가 1위를 차지했다. 격하게 외로워져야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중들에게 외로움 권하는 남자, 심리학자 김정운(54)을 만났다.
◇왜 지금 외로움인가?뽀글뽀글 퍼머머리, 동그란 안경, 동그란 얼굴. 심리학자 김정운에 대한 대중들의 이미지는 유쾌함이다. 주장하는 바를 에두르는 법 없이 직구로 던지며 살아온 그는 대학교수, 심리학자, 베스트셀러 저자, 명 강연자 등 소위 성공한 삶의 대명사나 마찬가지.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고, 가장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자연인이 됐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외로움을 권하는 책이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
그냥 글로만 된 책이 아니라 내그 그린 그림과 글을 곁들였다. 또 사진과 함께 내 감상 글을 넣기도 했다. 나로서는 상당히 만족스럽다. 기존 책의 통념을 벗어난 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런 시도의 책은 없었다. 일상의 경험에서 삶과 관계없어 보이는 심리학, 철학 등 연관성을 찾아내는 게 즐거웠다. 읽는 독자들도 일상적 경험이 철학으로 연관되는 걸 공감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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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독자층을 겨냥한 책인가
한국 남자들이다. 특히 지금 정신없이 바쁘다고 생각하는 삼십대부터 사십대, 오십대까지 남자들이 읽으면 좋겠다. 난 너무 바빠서 외로울 시간도 없어, 먹고 살기 바쁜데 무슨 외로움이야, 고독은 사치야 라고 말하는 남자들이 많다. 정말 바쁘게 사는데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이냐고 묻고 싶다. 또 그런 남자들을 사랑하는 여자들도 보면 좋다. 외로움이라는 실존적 질문은 누구라도 해야 한다.
-왜 하필 지금 외로움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나
사실 외로움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평균 수명이 짧을 땐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100세까지 산다. 나중에 어쩔 수 없이 외롭고 고독하고 소외감 젖어서 살아야 하는 시간이 온다. 외로움과 직면하는 훈련을 미리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걷잡을 수 없어진다. 100세 시대가 축복이 아니고 재앙이 된다. 외로움이라는 실존 문제를 아직 건강하고 살만할 때 부딛혀놓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힘들어진다. 늙어서 행복해야 진짜 행복한거다
-외로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공부다. 불안은 왜 올까? 주체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불안하다. 주체적 용기를 가지면 남들이 뭐라해도 내 삶이 재밌어진다. 내 실력이 늘어나면 말 그대로 내면이 풍요로워진다. 주체적 관심사가 있어야 한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관심사, 가치 등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공부하면 외로움과 친구가 될 수 있다. 내 외로움과 마주하면서 삶의 관심을 추구하다 보면 생산물이 나온다. 나같은 경우에는 책을 쓰고, 나무 깎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가구를 만들고, 새를 좋아하면 새 사진을 찍고. 인간은 뭔가를 생산할 때 가장 행복해진다. 자본주의사회가 비인간적인 것은 내가 생산하는 것이 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게 그림그리기가 행복한 건 어쨌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쾌감이 크다. 더이상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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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늙어서 외롭지 않으려면 공부하는 삶 살아야
남들에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던 그지만 정작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기분이었다는 고백이다. 가장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 내면을 들여다본 결과 어린 시절 하고 싶었던 그림을 찾아냈다. 그림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서 2년제 그림학교에 입학해 공부했고 자신이 그린 그림과 글로 책을 쓰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 혼자 그림을 그리던 자발적 외로움의 시간이 자신을 행복으로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우리가 ‘격하게 외로워야 하는 이유’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일본에서 2년제 그림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뜬금없이 느껴지는데 그림을 공부하게 된 까닭은?
요즘 나를 수식하는 말 중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잘나가던 교수를 때려치고’라는 말이다. 용기가 있어서 직장을 때려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훨씬 겁이 많아서 직장을 때려친거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되면서 은퇴한 교수가 얼마나 불행해지는지를 지켜봐왔다. 사실 직장에서 일찍 잘리면 새로 뭘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데 60~70까지 일하고 나서 은퇴하면 이후 할 일이 없다. 초라하게 늙어가는 은퇴 교수의 삶을 보면서 그렇게 사는 게 겁나서 때려치웠다. 지금까지 내 삶은 한번도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 그게 그림이었다. 고등학교때까지 미술 잘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었다.
-주체적으로 살지 않았다는 말은 충격이다. 그동안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미지는 유쾌하게 인생을 즐기는 이미지였다.
사실 난 고등학교 때 소풍가면 혼자 밥먹는 아이였다. 중고등학교를 통틀어 친구가 딱 한명이었다. 그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했기에 혼자 밥을 먹어야 했다. 그때 엄마가 애들과 나눠먹으라고 반찬을 많이 싸주면 혼자 꾸역꾸역 다 먹고 친구들과 먹었다고 거짓말 했다. 그랬던 내가 남들을 웃기기 시작한 건 살아남으려고 그랬던거다. 그게 내 진짜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진짜 모습을 되찾았나?
이제야 조금 내 얼굴을 찾은 기분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내 내면을 가장 편안하게 만든다. 그림 그리고 났을 때 가장 행복하다. 그림을 그리면서 글쓰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 글을 쓴다. 이전에는 없던 방식이다.
-사실 대한민국 가장이라면 누구나 직장을 때려치우는 꿈을 꾼다. 그러나 처자식 때문에 실현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고 만천하에 알려진 부인의 반응이 궁금하다
우리 마누라는 나에게 훈련이 잘 돼 있다. 그리고 우리 마누라는 낙천주의자다. 심지어 우리 큰 놈이 사춘기 때 집을 나갔을 때도 나는 밤새 잠을 못잤는데 마누라는 잘 잤다. 이 상황에 어떻게 잠을 잘 수가 있냐고 했더니 “내가 안잔다고 애가 들어오냐”고 했던 사람이다. 이번에도 마누라에게 “나 이거 할거야” 했더니 “그래라” 하더라. 기본적으로 나를 신뢰해준다.
-최근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독일 바우하우스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근대 미학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심리학적 형성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또 다른 한쪽은 질투에 대한 걸 연구하고 있다. 한국 사회 모든 현상은 질투로 설명할 수 있다. 타인의 욕망을 흉내내고 그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질투한다. 이 두가지가 앞으로 10년간 몰입할 주제다.
-올 한해는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
여수에 작업실을 얻어서 그림을 그리면서 지내려고 한다. 그리고 꼭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개를 키우는거다. 어려서 개를 키운 적이 있었는데 개가 너무 좋았다. 2015년은 너무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올해는 쉬엄쉬엄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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