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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 제공 | 필굿뮤직

[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래퍼 비지는 최근 ‘검은머리 파뿌리(Feat. 범주)’를 발표하며 ‘무브먼트 사운드의 재현’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비지는 무브먼트 크루의 재결집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이 곡을 통해 내보였다.

무브먼트는 비지의 소속사 대표이자 함께 하는 그룹 MFBTY의 리더인 타이거JK를 주축으로 결성된 힙합 크루다. 2000년부터 약 10여년 동안 한국 힙합을 이끌었던 최대 규모·최고 명성의 크루였다. 드렁큰타이거와 비지를 비롯해 바비 킴, 양동근, 션이슬로, TBNY, 에픽하이, 은지원, 더블케이, 도끼, 부가킹즈, 윤미래, 다이나믹듀오, 리쌍, 인세인디지, 사이먼 도미닉, 이센스, 미키아이즈 등이 크루원이었다. 당시 힙합씬에서 ‘독식 논란’이 일었을 정도로 흥행성, 주목도 측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집단이었다.

2006년 장충 체육관에서 무브먼트의 합동 공연이 열리는 등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지만 20011년 SBS ‘런닝맨’에 타이거 JK, 윤미래, 다이나믹 듀오, 사이먼 도미닉이 출연한 게 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2013년말 무브먼트 크루 수장 타이거 JK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무브먼트의 결별이나 해체 혹은 와해 수순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무브먼트 크루는 활동 기간에 드렁큰타이거, 씨비매스 등의 앨범을 통해 주제곡 같은 노래인 ‘더 무브먼트’ 시리즈를 4곡 발표했는데 마지막 곡인 ‘무브먼트4(꺼지지 않는 초심)’는 8년전 발표된 비지의 첫 EP에 수록돼 있다. 이곡은 무브먼트 크루원들이 거의 다 모여 함께 랩을 한 마지막 트랙이다.

-소울풀한 힙합곡 ‘검은머리 파뿌리’를 발표하며 ‘무브먼트 사운드의 재현’을 기치로 내걸었다. ‘무브먼트’는 비지에게 어떤 의미인가

내게는 20대의 추억이자 향수다. 무브먼트 단어 자체를 들으면 너무 그립다. 세상이 변하고, 새로운 트랜드에 맞춰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필굿뮤직’ 레이블 안에서 솔로로서 첫발을 내딛을 때는 상징 같은 게 필요해서 ‘무브먼트’의 기치를 내걸었다.

내가 아직 옛날 생각에 젖어있을 수도 있고, 옛날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전의 내가 없으면 지금의 내가 없다고 믿는다. 예전의 향수를 되새기며 그때를 그리워하면서 ‘검은머리 파뿌리’를 만들었다. 이 곡 나올 때는 별로 기대 안했는데 무브먼트 동료들이었던 타블로, 개코, 양동근, 도끼 등이 자신의 SNS 등을 통해 홍보해주는 걸 보며 ‘내가 지금 잘못 가고 있는 건 아니구나’하는 고마움을 느꼈다.

-과거 ‘무브먼트’ 시절의 사운드가 아니라 트랜디한 음악을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지난해부터 싱글이 아니라 10곡 정도 실린 EP 앨범을 생각했다. 요즘 유행하는 ‘트랩’ 장르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래퍼 도끼에게 “나 트랩할까. 비트 하나만 만들어줘”하니 도끼가 “형, 하지 마세요. 비져너리 시절, 원래 하던 거 하세요. 그게 멋있어요. 그래도 형이 필요하시다면 트랙 한번 보내 볼게요”하더라.(웃음)

-‘무브먼트 크루’의 주제곡 같은 노래인 ‘더 무브먼트’ 시리즈가 ‘4’까지 나왔었는데, 마지막 곡인 ‘무브먼트4(꺼지지 않는 초심)’는 비지의 8년전 솔로 앨범에 실려있다.

사실 그때 그 노래를 내 앨범에 싣는 것에 반대했었다. ‘무브먼트’의 수장인 타이거JK 형의 앨범에 넣어야 맞는 노래라고 봤다. 그런데 무브먼트 친구, 선후배들이 내 앨범에 넣으면 좋겠다고 응원해줘서 넣게 됐다.(YDG, 션2슬로우, TBNY, 에픽하이, 은지원, 타이거JK, 더블K, 도끼, 리쌍, 부가킹즈, 윤미래, 다이나믹 듀오, 디지 등 무브먼트 크루 주요 멤버가 참여한 이 곡은 거의 8분에 이르는 대곡이다.)

2008년 홍대 지하철 역에서 이곡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기 위해 모두 모인 적이 있다.이후 4~5명씩 따로 모인 적은 있지만 무브먼트 크루 전체가 모인 마지막 공식 활동이었다. 그때 함께 사이퍼를 한 영상 촬영이 사실상 무브먼트 크루 단체의 이름을 건 마지막 활동이 돼버렸다.

-무브먼트 시절 동료 중 타이거JK 외에 누구와 현재 교류하나.

뉴질랜드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뒤 오클랜드 현지 대학교에서 낮에 공부하며 밤에는 중국어와 호텔경영학을 공부하며 밤에는 음악학교인 스쿨 오브 오디오 엔지니어(School of Audio Engineer)을 다녔다. 거기서 2000~2001년 오디오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한국에 와 2002년 ‘골목길’이 수록된 양동근의 1.5집 앨범에서 디제잉과 랩으로 참여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초창기 양동근과 새벽에 만나 길거리에서 프리스타일을 통해 즉흥적으로 랩을 주고받으며 놀았던 건 내게 소중한 추억이다. 그때 녹음하고 발표하지 않은 트랙들을 들어보면 아직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것 같다. 동근이와는 언젠가 ’YDG&비지’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약속한 상태다.

지금은 사장이 된 동료들이 많은데 처음엔 아무 것도 가진게 없던 시절부터 서로를 알았다. 그중 도끼는 형같은 동생이다. 자기 위치가 바뀌고, 세상이 변해도 나를 대하는 온도는 언제나 한결 같다. 도끼가 성공하기 전부터 ‘네가 내 형 같다’는 말을 자주했다. 도끼는 물론 도끼 아버지와도 친하다. 도끼의 친형 미스터 고르도가 최근 내 첫 음악방송 대기실에 찾아와 자기가 내 매니저가 돼 뛰어다니고 싶다고 응원해주더라. 고마웠다. 도끼는 내가 믹스테이프를 준비한다고 말하면 먼저 트랙과 랩을 보내주는 등 늘 고맙다.

2010 제19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
타이거JK(왼쪽)와 비지. 스포츠서울DB

-‘무브먼트’는 공통된 음악 스타일이 있거나 모든 구성원이 같은 소속사에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서로 공유하는 생각이나 가치관이 있었는가

‘힙합’이라는 큰 문화 안에서 서로 통하는 게 있었다. 우리가 하는 음악으로만큼은 결코 부끄럽지 말자는 책임감을 무브먼트 식구들끼리 공유했었다. 양동근과 새벽에 만나 랩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줬던 추억이 있다.새벽 3시에 다이나믹듀오의 개코가 갑자기 집앞에 찾아와 “형, 제가 지펑크 비트를 만들었는데, 형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들려드리려고 왔어요”했던 일도 있을 만큼 우리는 그때 음악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오랜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소중함을 느꼈던 시기를 지나 시기, 질투 등 온갖 잡음과 소음이 있었던 때도 있지만 모두 지나갔다. 이제는 모두가 서로를 축하해주고, 응원해주는 시기가 온 것 같다.

-2000년부터 10여년 동안 ‘무브먼트 크루’는 국내 힙합계의 가장 중요한 축 중 하나였다. 재평가받아야 할 요소가 있다면 어떤 점이 있나

과거와 역사가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새로운 것도 빛을 볼 수 있다. 우리가 힙합 문화를 처음 접할 그 무렵엔 랩의 톤과 스타일을 찾으려면 외국 힙합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 개척해 나간 래퍼들이다. 지금 힙합을 시작하는 후배들은 당시 선배들이 쌓아놓은 유산이 있기에 자신에게 맞는 톤과 스타일을 찾기 쉬워졌다.

-무브먼트 크루가 활동을 중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들 사장이 돼서 바빠서 그렇다.(웃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무브먼트 크루가 활동을 중단한 건 크루원 개개인의 개인적 갈등 때문이 아니다. 뮤지션 주변에 여러 스태프가 모이게 되는데 그중 일부가 잘못된 생각과 판단을 하는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무브먼트 크루원 사이에 다시 모여 뭔가를 해보자는 의견은 없나

향수, 추억을 곱씹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션이슬로 형은 무브먼트를 다시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가끔 한다. 바비 킴 형도 술을 마시면 가끔 무브먼트의 재결합을 이야기 한다. 사장이 돼 회사를 운영하고, 아이의 아빠가 되는 등 멤버들의 삶이 바빠져 내색을 못하지만 이따금 그런 연락이 오는 걸 보면 그때를 그리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무브먼트 크루 멤버 중 나이가 많은 편이라 재결합의 구심점 역할을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다. 향수를 느끼는 멤버가 나뿐이 아닌 것이 분명하고 우리가 모여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계속 듣는다. ‘무브먼트’라는 타이틀을 걸든 안걸든 마음 맞는 멤버들끼리 모여 뭔가 음악적 회포를 풀 기회를 늦어도 내년 안에는 가질 것이다.

monami153@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