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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을 피해 숨어든 ‘데카메론’처럼 잔혹한 여름의 무더위로부터 도망쳤다. 해발고도 고작 30~40m의 서울에서 출발, 이름도 좋은 38번 국도를 타자 서서히 고지대로 오른다. 급기야 500m를 넘는 정선땅을 지나 평균 900m 이상 국내 최고도 도시인 태백으로 넘어왔다.
1000m를 바라보는 곳에 들어서 차에서 내리자 이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몸을 훑고 지나는 쾌적한 바람은 그 어떤 최신형 에어컨보다 낫다. 허브 야생화의 싱그러운 향이 섞인 듯 청량함마저 느껴진다. 바로 전날까지 열대야에 시달렸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여름의 뜨거운 입김은 (금방 샤워하고 나온)몸을 ‘포스트잇’처럼 끈적이게 만들었다. 불쾌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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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섬뜩한 뙤약볕은 여기도 있다. 신기전의 화살처럼 내려와 머리통에 내려 팍팍 꽂힌다. 하지만 이를 피해 그늘로 숨어들면 바로 냉기가 이불처럼 감싼다. 행복하다. 숨을 곳이 있다니.
구와우에 가득 폈다는 해바라기 밭을 갔다. 벌써 봄을 잊어버려 원색이 그리운 까닭이다. 한여름의 해바라기. 말 그대로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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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사랑한 그 탐스런 꽃은 벌써 커다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기껏해야 학예회 밖엔 없었지만 스폿라이트를 받으며 대형 무대에 선 느낌이다. 수십만 개의 얼굴들이 하나같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거무작잡한 얼굴들은 하나같이 노란 풍선을 흔들며 환호하는 중이다. 과분하게도.
해바라기 밭은 가운데 길을 따라 서서히 오르게 되어 있는데 마치 그레미 어워드 시상식에 입장하는 스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 끄트머리에 전망대가 있어 드넓은 노란 바다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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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열리는 해바라기 밭 근처에는 염소와 산양 등 고산 동물을 볼 수 있는 우리도 있어 아이들이 몰린다. 나른한 오후를 즐기는 산양 부부를 보고 ‘시원한 곳에 살아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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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뻗은 초록빛 바다
태백은 내륙 산간이라 바다가 없다고?. 해바라기의 노란 바다를 보고난 후, 녹색 바다로 이동했다. 새파란 여름 하늘에 가득한 열대 구름을 향해 온통 배추밭이다. 백두대간의 중추 격긴 매봉산(1303m) 바람의 언덕에는 진록의 배추로 뒤덮혔다.
그럼 그렇지, 선풍기를 틀어놨으니 당연히 시원하지. 거대한 선풍기(?)를 보고 태백이 시원한 이유를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이 그로테스크한 바람개비는 풍력발전기다.
구름이 밀려왔다. 습하지 않고 서늘하다. 가만있어도 손오공의 근두운처럼 달려오니 구름 위의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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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끝이 아니다. 하나 더 있다. 삼수동 귀네미마을. 이곳 역시 천상의 배추밭으로 유명한 곳이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을 마주보고 있다. 첩첩 고산준령을 모두 파노라마로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이 마을이 있다. 정감록에도 등장하는 귀네미 마을은 해발 1000m에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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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초록 배추밭. 슬로프처럼 땅으로 뻗었다. 멀리 만항재 쪽으로 운해가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보인다. 이름모를 야생화도 곳곳에 피었다. 하늘나리, 말나리, 둥근이질풀, 지느러미엉겅퀴 등 저마다 이름이 있지만 굳이 외우지 않으련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야생화는 이름을 모르는 편이 더 어울린다. 가만히 살펴보고 있자니 눈이 시린다. 무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고원에서 색의 향연을 즐긴다. 천상에서의 휴식이란 이처럼 시원하고 좋은 것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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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지만 시원해지고 나니 특히 배가 고프다. 태백은 광산업 전성시절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이들이 몰린 덕에, 팔도 음식도 따라 왔다. 강원도에서 맛의 다양성을 느껴볼 수 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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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에 평양냉면집이 있다해서 달려갔다. 60년이 훨씬 넘은 노포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로 낸 육수를 섞어 면을 말아낸다. 순 메밀보다는 짙은 색으로 투박한 맛을 내는 면이 술술 빨려든다. 삼겹살 수육도 입에 짝 붙는다.
시원한 곳에서 냉면까지 즐겼으니 더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담백한 냉면을 비우고 나니 고기가 당긴다. 발걸음은 ‘실비집’으로 이어졌다. 실비집이란 특정 업소명이 아니다. 태백에서 값싸게 고기를 즐길 수 있는 고깃집을 실비집이라 부른다.
이름하여 충남실비집. 정육점을 함께 하는 곳인데 고기가 척 보기만 해도 예쁘다. 내방 벽지로 디자인하고 싶을 정도다. 맛은 더 훌륭하다. 보기좋은 갈빗살이 맛은 더 좋다. 고소한 기름의 풍미가 입안에 화악 퍼진다. 입에 머금은 고기향을 코로 내쉬고 하니 더위에 지친 몸이 거뜬히 회복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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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뜨기가 아쉬워 된장에 소면을 말았다. 아참, 그전에 곰탕도 맛봤다. 진한 사골 육수에 그득담긴 소머리의 잡육이 구수하다. 한 그릇에 5000원이라니. 이정도면 봉사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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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순례는 다음날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아침에 선지국 한 그릇을 비우고 난 후, 최근 핫하다는 태성각에서 해물잡탕 경지에 오른 짬뽕을 맛봤다. 바로 강산막국수로 갔다. 원래 음식에 탐닉하는게 아니라 순전히 취재를 위함임을 다시 한번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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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막국수를 잘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사실 배가 불러 막국수 한그릇만 주문할 요량이었지만 줄 선게 아까워 감자전도 주문했다. 선택은 옳았다. 옆 테이블을 슬쩍보니 젊은 여성 둘이 와서 각자 감자전을 한장 씩 맛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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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맛이 좋으면 ‘일인일매’일까. 존득하고 입에 찰싹 달라붙는 고소한 감자전은 명불허전이었다. 바삭한 테두리부터 먹고 부드러운 속을 연신 입에 쑤셔넣었다. 꿀떡꿀떡 잘도 넘어간다. 김의 향기 가득 품은 막국수와도 찰떡궁합이다.
시원한 곳에서 좋은 것 보고 맛난 음식 먹고 싱그러운 공기를 마셨다. 오감만족에 신선놀음이다. 아마 나는 내년 여름에도 이곳에 있을 듯 하다. 경천동지할 문제만 없다면.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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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둘러볼만한 곳=두문동재와 금대봉, 분주령, 만항재 등에서 국내 최대 야생화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최소 4일 전 인터넷(태백시청 관광 홈페이지)으로 신청해야 한다. 하루 탐방 가능인원은 300명(1인 최대 5명까지 신청). 금대봉 산기슭 검룡소는 514㎞에 이르는 한강이 시작되는 발원지다. 하루 2000톤의 지하수가 석회암반을 뚫고 나와 20여m에 이르는 계단식 폭포를 이룬다. 태백시청 환경보호과(033)550-2061. 태백 철암역을 중심으로 협곡열차 V-트레인을 타고 그림같은 낙동강 협곡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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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2016 태백 한강·낙동강 발원지 축제’가 이달 29일 개막한다. 8월 7일까지 열흘간 열리는 축제에선 물을 주제로 한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진다. 도심 황지연못(낙동강 발원지)에선 낙동강 1300리 소원성취 체험, 신비한 발원수 족욕체험, 황지연못 낙동강 발원수 채수 체험 등 다양한 체험거리와 마당극, 문화공연, 전통혼례 재현 등 볼거리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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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 일원에서 펼쳐지는 ‘얼水절水 물놀이 난장(7월30~31일, 8월6~7일)’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물놀이 난장으로 뛰어드는 물총과 물폭탄 대전이다. 신나는 물싸움과 게릴라 물폭탄, 화끈한 거품폭탄까지 다양한 형태의 물놀이가 펼쳐지면서 한낮의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주고 푹푹 쌓인 스트레스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
물풍선 던지기, 팀 대항 과녁 맞추기 등의 재미 넘치는 놀이도 분위기를 띄운다. 특히 축제 기간 동안 태백시에 300m 초대형 워터 슬라이드가 설치돼 워터파크 못지않은 신나는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축제 기간 매일 오투리조트에서 야외영화를 무료 상영(오후7시30~10시)한다. 사냥, 해어화, 히말라야 등 다양한 영화를 준비했다. 문의 태백시 축제위원회(033)550-20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