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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게 참 묘한 습성이 있는 동물이다. 다른 동물은 보통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고, 더우면 시원한 곳을 찾게 마련인데(특히 고양이는 귀신같이 지내기 좋은 곳을 잘 찾아낸다.) 유독 인간은 추운 곳을 마다않고 찾아갈 때가 있다. 해마다 겨울이면 눈과 얼음이 잔뜩 있는 강원도 평창과 태백에 ‘진짜 겨울’을 찾아 나서는 관광객들을 말한다.
나도 그랬다. 생전 입지 않았던 내복까지 겹겹 껴입고(나중에 알고보니 실수했다. 맨밑에 받쳐 입었던 티셔츠는 쿨맥스였다.), 두 켤레의 등산 양말에 스패츠(각반)까지 챙겼다. 답답하지만 따뜻한 사무실에만 있었더라면, 혹은 따스한 곳으로 떠났다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혹한지로 떠나는 기분 역시 썩 좋다. 겨울엔 역시 겨울다운 것을 즐겨야 한다는 생각은 돌아올 때 더욱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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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아이스크림 위를 걷다
서울을 떠난 자동차가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면 눈이 부시기 시작한다. 산과 들에 겨울색이 칠해졌기 때문이다. 전국 최고의 적설량을 자랑하는 강원도 평창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아예 눈천지가 펼쳐지는 셈이다. 눈덮힌 들은 새하얀 반면 산은 희끗희끗한 정도다. 이곳에 바람이 많이 부는 통에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날려 떨어졌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설산의 매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설경을 즐기기 위해 보통은 대관령 선자령 트레킹 코스를 걷거나, 차로 삼양목장을 오르고 용평리조트 뒷산인 발왕산 고개를 넘는다. 아예 용평리조트(횡계)나 휘닉스파크(봉평)에서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올라 백두대간 고산준령에 쌓인 눈을 보는 방법도 있다. 너무도 추웠던 나머지 나는 후자를 택했다. 태기산 자락인 휘닉스파크에 올라 파도처럼 출렁이는 흰산들을 잠시 바라보다 내려오기로 했다. 매우 추운 날이니만큼 나무에는 새하얀 상고대(霧氷)가 피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역시 거센 바람 탓인지 없었다. 대신 코끝에 하얀 서리가 엉겨붙어 얄궂은 서리꽃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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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 비로봉까지 오르는 길은 얼어붙은 오대천 계곡을 따라 새하얀 겨울 트레킹이 가능하다. 얼어붙은 오대천 하얀 설맥 아래로는 검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나뭇가지에서 가끔 눈뭉치가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뿐 사방이 고요하다. 숟가락으로 팥빙수를 비비듯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만이 계곡을 가득 채운다. 아무도 밟지않은 눈을 밟던 기분, 지금도 그 장면이 눈에 밟힌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약 8㎞, 상원탐방지원센터에서 비로봉까지는 3㎞ 정도인데 그리 험하지는 않지만 꽤 긴 탓에 한겨울에는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물론 나는 상원사까지 차를 타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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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슬러시같은 산소를 마시다
강원 남부권인 태백 역시 눈꽃의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특히 겨울 등반 코스로 이름난 태백산이 있어 이맘때면 눈축제와는 별개로도 수많은 산꾼들이 모인다. 태백의 겨울은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삼수령과 두문동재의 자작나무 숲,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갯길 만항재, 이름만 들어도 뭔가 기대되는 ‘바람의 언덕’ 매봉산, 모두 새하얀 눈과 청량한 공기가 곁들여진 ‘진짜 겨울’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중 최고는 태백산을 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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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태백산에 올랐을 때가 생각난다. 일출과 상고대를 모두 잡기 위해 이른 새벽에 나선 날은 공교롭게도 그해 겨울 가장 추운 날이었다. 유일사 코스 주차장 전광판에 적혀있는 숫자는 한번도 본 적없는 낯선 숫자였다. 영하 24도. 정말이지 그렇게 추운 날은 난생 처음이었다. 두꺼운 양말 두개를 신었지만 금세 얼어붙은 발가락은 뭔가에 낀 듯 아파오고, 배구선수(아마 신진식 선수 정도가 아닌가 한다)의 스파이크로 세차게 뺨을 맞은 듯 얼얼했다. 멍청한 스키 장갑까지 무용지물이다. 장갑 속에서 손가락을 빼서 주먹을 쥐고 있어야만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가방 안 생수병이 천제단에 오르기 전 모두 꽁꽁 얼어붙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유일사를 지나면서 슬슬 체온이 올라 괜찮아지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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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어도 그날의 추위는 평생 기억날 듯 하다.
하지만 기어코 또다시 태백산을 찾은 것은 내가 바보라서가 아니다. 수퍼맨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찾기위해 남극(북극이던가?)을 찾는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의 신비스러운 얼음산, 길섶은 루돌프의 뿔을 닮은 눈꽃으로 장식됐고 살며시 푸른 빛을 발하는 시린 눈(雪)은 시린 눈(眼)에 집어담기에 황공하다. 근사한 풍경은 추위마저도 감미롭게 느끼게 한다. 막 양치를 끝내고 그레이프후르츠 주스를 마실 때처럼 차갑고 청량한 공기가 콧속으로 마구 밀려든다. 슬러시같은 산소를 마셔본 적 있나? 방한대를 벗고 마음껏 심호흡을 했다. 채 데워지지지 않은 공기가 허파까지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 이걸 마시러, 이걸 보러 겨울여행을 떠난다.
평창·태백 | 글·사진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여행정보
●잘곳=평창에는 용평리조트와 알펜시아, 휘닉스파크, 한화리조트 등 호텔급으로 고급스러운 숙소가 많다. 면온IC에서 나오면 W모텔이 있는데 깔끔하다.(033)333-2004. 태백엔 오투리조트가 있으며, 인근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선 스키와 다양한 엔터테인먼트가 어우러진 최고의 숙박을 경험할 수 있다. 황지연못 주변 꿈모텔이 접근성과 청결도에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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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진부에는 갈비탕으로 소문난 집이 있다. 명진해장국은 아주 ‘실한’ 갈비탕으로 손님을 끌어모으는 집이다. 1만원 짜리 왕갈비탕(특)을 주문하면 손으로 들고 뜯어도 한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맛봐야 할만큼 푸짐한 갈비 도막을 서너개씩 넣어준다. 담백하면서도 뭔가 든든한 국물 맛도 일품이며 곁들이는 반찬도 좋다. (033)335-8988.
전통적으로 유명한 오삼불고기는 횡계 납작식당이 잘한다. (033)335-5477. 태백은 한우로 유명하다. 특히 상장동 배달실비식당은 연탄불에 고소한 갈빗살을 저렴하게 구워먹을 수 있는 집으로 소문났다. (033)552-3371. 국물이 자작한 태백닭갈비와 손맛 좋은 구와우 순두부 역시 이름난 집이다. 황지동 태백닭갈비 (033)553-8119. 구와우 순두부(033)552-7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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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볼만한 곳=지금 쯤이면 언제가더라도 새하얀 설산을 자랑하는 에코그린 캠퍼스(구 삼양 대관령목장)의 이국적인 풍경이 멋지다. 동해전망대(1140m)까지 산책로(4.5㎞)가 펼쳐져 걸으면서 다양한 겨울풍경을 맛볼 수 있다. 입장료 8000원(어른 기준) (033)335-5044. 사철 관광코스로 좋은 양떼목장 역시 겨울에도 변함없는 인기를 구가하는 곳이다. 양먹이 비용 4000원. (033)335-1966. 이외에도 의야지마을(바람의 마을), 대관령눈꽃마을 등 눈썰매, 전통스키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마을도 있다. 평창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www.yes-pc.net)
태백에는 재미난 안전교육을 통해 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일깨워주는 청소년안전체험관 ‘365세이프타운’과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www.paleozoic.go.kr), 실제 탄광을 개조한 태백체험공원 등 에듀테인먼트 시설이 많다. 태백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tour.taebaek.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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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상품=우리테마여행(www.wrtour.com)은 매주 토,일요일 서울에서 아침 일찍 버스로 출발해서 약 12㎞의 평창 눈꽃 트레킹(대관령~국사성황당~새봉 전망대~선자령)을 즐기고 봉평 허브나라 등을 다녀오는 당일 여행상품을 판매 중이다. 회비는 3만1900원. 또 같은 기간에 태백산에서 눈부신 설경을 맛보는 눈꽃여행상품(장군봉, 천제단)도 함께 판매한다. 2만5000원. (02)733-0882.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