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기 이사장
국민체육진흥공단 조재기 이사장2018. 5. 24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박현진 체육부장] 그를 처음 대하면 엄청난 거구에 먼저 압도당한다. 키(190㎝)만 큰 게 아니다. 떡 벌어진 어깨와 굵은 팔뚝, 탄탄한 하체까지 타고난 ‘무골’이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온화한 미소에서 찾을 수 있다. 묵직한 인상으로 다가와 섬세한 배려로 두 번 놀라게 만든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하 공단) 조재기 이사장(68)은 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 출신이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유도 라이트헤비급(93㎏)에서 4위에 그치자 삭발을 하며 “이대로는 못돌아가겠다”고 읍소해 다시 무제한급으로 출전하더니 기어코 동메달을 따낸 일화는 유명하다. 은퇴한 이후로는 학업에 정진해 오랜 시간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대한체육회 사무총장과 부회장, 태릉선수촌장 등 체육계 요직을 거치며 체육행정을 근대화하는데도 힘을 쏟았다. 동아대에서 정년퇴직한 뒤 공단 이사장에 공모해 지난해 올림픽 메달리스트로는 처음으로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에 올랐다. 그는 “공단은 조직, 재정, 기능이 핵심인데 내 이름이 ‘조·재·기’ 아닌가”라며 껄껄 웃었다. 내년이면 창립 30주년을 맞는 공단이 향후 30년을 설계해야할 중요한 시점에 문과 무, 경험과 이론, 스케일과 섬세함을 두루 갖춘 그를 이사장으로 선택한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었다.

- 의미있는 시점에 중책을 맡았다. 공단의 향후 30년을 어떻게 설계하고 있는가.

공단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탄탄하고 알찬 공공기관이다. 창립 이후 29년 동안 알차게 키워왔다. 30세를 두고 공자는 ‘이립(而立)’이라고 말씀하셨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세우는 시기라는 뜻이다. 그동안 공단은 정부의 허가를 통해 1988 올림픽이 남긴 유산을 관리하며 성장해왔다. 그렇지만 정부의 규제와 입김 속에서 움직이다보니 스스로 만들고 움직이는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제 다가올 새로운 30년은 공단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자립과 혁신을 일깨우고 싶다. 그 기반을 만들겠다. 이는 각 조직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핵심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하자는 정부의 방침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혁신을 통한 자립에 방점을 두고 공단을 운영하겠다.

조재기 이사장
국민체육진흥공단 조재기 이사장2018. 5. 24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 선수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고, 학업을 쌓아 대학 강단에 섰다. 체육계에서도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스포츠행정가로서도 일가를 이뤘다. 개인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이룬 성취를 가장 값지게 평가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공단 이사장직을 수행하는데 어떻게 녹아들고 있는지 궁금하다.

언뜻 스펙트럼이 넓어보이지만 오직 유도인으로서 체육 한 길을 걸었을 뿐이다. 유도를 평생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 남들에 비해 늦게 운동을 시작했지만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사장으로 부임할 무렵 유도 9단 단증을 받았다. 9단을 일컬어 ‘입신(入神)’이라고 한다. 한 분야에 있어 어느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은 것 같아 뿌듯하다. 그런 유도의 가르침을 항상 되새기면서 공부하고 가르쳤고, 행정을 하고 공단을 경영하고 있다. 유도가 중심을 잡아준 가운데 스포츠맨으로서 일관성 있게 살았다. 스포츠는 공평하다. 기울어 있는 운동장에서 경기를 할 수는 없다. 시작이 평등하고 과정에서는 반칙이 용납되지 않는다. 수없는 반복훈련을 통해 무아의 경지에서 움직임이 나온다. 그렇게 펼친 경기의 결과는 곧이 곧대로 수용한다. 내가 부족해서 진 것이라면 다음 승부를 위해 더 노력하면 된다. 이런 원칙이 스포츠맨의 기본 원칙이고 경영도 마찬가지다. 공평하게 반칙하지 않고 땀흘려 거둬들인 결과를 받아들이되 더 나은 퍼포먼스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 된다. 그게 생활화돼있다.

- 한국사회의 가치관이 양적인 팽창보다는 질적인 성장 쪽으로 옮겨지면서 스포츠의 패러다임도 전환기를 맞고 있다. 성적보다 스포츠의 본원적 가치를 구현하는데 점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큰 흐름이다. 그 속에서 공단이 어떤 역할을 해야한다고 보는가.

스포츠도 경제발전과 궤를 같이 하면서 굉장히 큰 영향을 받는다. 스포츠도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라가게 돼있다. 우리나라는 압축적 성장기를 지나왔다. 정치, 경제, 산업, 사회가 고도성장을 이룬 뒤에는 자연스럽게 분배의 문제가 대두된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메달리스트를 키워서 성적을 내는데 집중해왔지만 그 성장의 과실을 고르게 분배해 전 국민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다. 한국 스포츠는 그동안 이기는데만 초점을 맞춰왔다. 승리지상주의는 도입 과정에서부터 시작됐고 여기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이제 젊은 스포츠인들은 당당하게 플레이하고 메달에만 집착하지 않고 경기를 즐긴다. 스포츠의 본질 자체가 즐기는 것이다. 공단도 전 국민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하는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라도 운동하고 싶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등 한국 체육의 실무를 담당하는 기관과도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하는데 사안에 따라 미묘하게 입장 차가 엇갈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체육회에도 오랫동안 몸담았던만큼 누구보다 그런 부분에 대해 깊이 고민했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각 기관들이 이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나는 체육인이니 몸을 예로 들어 비교해보자. 문체부는 정책을 구상하고 실현하는 톱 매니지먼트를 맡는다. 사람으로 따지면 생각하는 머리다. 체육회는 현장에서 성적을 내고 스포츠를 발전시키고 지도하는 조직체다. 손과 발이라고 할 수 있다. 공단은 오장육부다. 소화하고 숨 쉴 수 있도록 혈액과 영양분을 끊임없이 만들어서 공급한다. 머리와 손발, 오장육부가 하나로 움직일 때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체육도 그래야 한다. 문체부는 상위기관으로서 국가 발전에 스포츠가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냉정하게 판단을 해야 하고 체육회는 현장에서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국민체력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공단은 체육진흥기금을 넉넉하게 확보하고 잘 배분해 한국 스포츠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오장육부의 구실을 충실하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한 몸으로 기능해야 한다. 따로 놀면 안된다. 역할은 다르지만 스포츠를 진흥시키고 성장 발전시키는데 다른 논리가 들어올 수 없다.

- 대한체육회가 스포츠토토지원금의 50%를 정률로 배분하자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클럽 스포츠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이를 통해 체육계가 재정적으로 완전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체육회는 자금의 집행이 문체부를 통하는 형식이 됐건 체육회를 거쳐가는 형식이 됐건 아니면 공단이 직접 집행하건 그 비용을 늘어난 토토지원금으로 충당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시설(AS·Area System)→프로그램(PS·Program System)→클럽(CS·Club System)’ 순으로 스포츠에 대한 투자의 우선 순위를 둬야한다고 강조하는 평소의 지론에서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 같은데.

직접 들어와서 보니 공단이 아주 정확한 프로세스를 갖고 움직인다. 시설, 프로그램, 클럽으로 가는 3단계 시스템은 교과서적으로도 얘기하는 서비스다. 이미 공단에서 시설(AS) 부문과 프로그램(PS) 사업은 거의 다 진행했다. 클럽(CS)은 체육회에서 진행해야 하는 과제임에 틀림없고 그러면 당연히 그에 투자할 예산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작정 돈을 받아서 떨어져나가는 것이 자립은 아니다. 필요한 부분 있으면 협의해서 예산을 증액하면 된다. 우리는 떨어져 나갈테니 한 몫 챙겨달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 몸이다. 가장 튼튼한 구조가 트라이앵글이다. 돈을 쓸 때 힘은 들겠지만 절대 흐트러질 경우가 없다. 돈을 쓰면 성과를 내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정률 배분이 진정으로 타당한 길인지는 검토하고 논의해보자. 안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목표가 같다면 체육회와 공단이 함께 문체부와 기획재정부를 설득해 관련 예산을 늘이고 돈을 쓸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면 된다. 몸통에서 떼내면 팔다리도 죽는다. 붙어있되 간섭하지 않고 팔길이 내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게 맞지 않나 싶다.

조재기 이사장
국민체육진흥공단 조재기 이사장2018. 5. 24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 공단은 체육복지의 전초기지이자 한국 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자금원이기도 하다. 공단이 건강하게 돌아가야 한국 스포츠에도 활력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잘 쓰는 것 이상으로 잘 벌어들이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생산성 측면을 강화하다보면 사행성이라는 벽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어떻게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나는 돈을 버는 재주는 크게 없지만 버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국내에 100조원대의 시장이 있다. 그 중 불법 도박시장이 80조원 규모이고 정부에서 허가를 내준 경마, 경륜, 경정, 스포츠토토, 카지노, 복권 등 6개가 나머지 20조원 규모다. 경륜, 경정, 스포츠토토는 공단에서 운영한다. 80조원대의 지하시장을 양지로 끌어내면 체육재정은 더 탄탄해질 수 있다. 지금도 거의 한계치까지 벌고 있다. 정부에서 규모를 잘 조절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 벌어들일 수도 없다. 사행산업을 국가에서 규제하면서 이렇게 정확하게 관리감독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프로그램이 정말 잘 돼있다. 국민소득이 2~3만 달러를 넘어가면 대체로 사행산업이 오픈된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본능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라스베가스의 카지노를 열어줬다가 이제는 인디언마을마다 다 카지노가 열렸다. 카지노보다 복권시장이 훨씬 큰데 주별로 로또도 한다. 일본은 개인 사업자에게 파친코 시장을 내줬다. 정부가 수입의 70%를 가져가는 구조지만 사업자가 50%를 가져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제는 카지노도 오픈된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경륜과 경정은 일본에서, 스포츠토토는 유럽 선진국을 따라갔다. 그러나 전체 수입의 70%를 환급하고 있고 수입의 20%를 체육진흥기금으로 적립한다. 운영관리비와 세금은 10%다. 10만원 이상 베팅을 할 수 없어 도박중독자가 많이 생기지 않고 치료 상담도 많이 한다. 이렇게 국가가 사행심리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곳은 없다. 대한민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 스포츠가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문을 여는 단초를 제공했다. 남북교류 활성화의 전면에도 스포츠가 나설 가능성이 높은데 공단에서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제법 있을 듯하다.

스포츠를 발전시키는데는 인재와 자본, 경험이 중요하다. 정부에서 종합관리를 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쓸 수는 없지만 어쨌건 공단이 쌓아놓은 풍부한 자금이 있고 탄탄한 조직과 인재가 있다. 1988 올림픽 이전에는 전무하던 체육시설들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사업을 키워온 노하우도 있다. 인프라 투자는 거의 끝났다. 전국 방방곡곡의 학교와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깔았고 근린체육시설도 마련했다. 이를 ‘국민체력 100’ 등 프로그램 사업에 활용하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서울올림픽의 기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운영비 가운데 상당수도 공단이 지원한 것이다. 30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제 남북교류가 활성화되면 이런 경험을 토대로 하나하나 순서대로 지원할 수 있다. 경기력은 단일팀을 만들면 시너지를 높일 수 있을 것이고 북측 주민들이 스포츠를 즐기고 웰빙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재원과 경험을 투입할 수도 있다. 한때 단편적으로 북측에 인조잔디 지원사업을 펼친 적도 있지만 이제는 체계적으로 접근할 생각이다.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곧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이미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다. 역량도 충분하다. 미리 준비해야 현실로 닥쳤을 때 성과를 낼 수 있다.

- 유도인으로 평생 살아왔지만 카바디의 대부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방콕으로 개최지를 옮기겠다고 흔들었다. 그래서 당시 조직위에서 내게 도움을 요청해왔다. 서울올림픽을 3년이나 준비했고 아시안게임도 몇 차례 조정위원을 맡은 적이 있어서 나름대로는 아시안게임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해서 수락했다.그런데 38개 종목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 중 하나는 도저히 모르겠더라. 그게 카바디였다. 제자 한 명을 3개월 동안 인도로 유학을 보내 배우도록 했고 이를 학교에서 가르쳐서 대회를 완벽하게 치렀다. 그렇게 인연을 맺고 보니 카바디가 참 좋은 스포츠더라. 끊임없이 “카바디”를 외치면서 움직이는 호흡운동으로 석가모니도 수련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오랜 스포츠다. 정적인 부분이 요가로 굳어졌다면 동적인 요소로 남은 것이 카바디다. 공간도 11~13m 정도의 놀이하는 마당 정도면 된다. 카바디에 대해 몰라도 10명만 모이면 5분 내로 룰을 설명하고 바로 경기할 수 있다. 돈도 하나도 안든다. 이런 스포츠가 세상에 어디있나. 인도에서는 모래사장에서 ‘비치 카바디’로 많이 하는데 그걸 실내스포츠로 정착시켰다. 인도에서는 상류사회에선 크리켓, 서민층은 카바디가 최고 인기 스포츠다. 그 매력에 홀딱 반했다. 아시안게임에도 오래 전에 들어갔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올림픽 정식정목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체육회 가맹경기단체가 지방에 문을 연 것도 카바디가 처음이었다. 당시에 체육회 정관에 ‘중앙경기단체 사무국은 서울에 둔다’고 돼있던 것을 내가 주도해서 고쳤다. 규정은 불편하지 않게 도와주는 것인데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에 사무국만 만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요트장도 없는 서울에 요트협회가 있을 필요가 어디있나. 지방에 해당 종목의 메카가 있다면 당연히 그런 곳에 사무국이 있어야 한다. 중앙정부도 세종시로 내려갔다. 그게 분권이다. 1년을 씨름해서 대한카바디협회를 부산에 마련했다. 선수들이 있고 관련된 직업도 생겼다.

- 끊임없이 변신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편이라 혹시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종목이나 취미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굳이 지금의 상태를 표현하자면 ‘유도교의 신도’, ‘카바디교의 전도사’, ‘체육통합교의 목사’ 정도 되는 것 같다. 카바디를 경험하면서 전 세계에 이와 유사한 스포츠가 다 퍼져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술래잡기나 일본의 오니고코가 그렇고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비슷한 놀이를 했다. 동물 사냥을 해야했던 원시시대에 동물 몰이를 하던 것을 스포츠화한 것이다. 이런 고유의 스포츠를 잘 세팅하면 세계적인 종목으로 만들 수도 있다. 태권도는 이미 올림픽 종목이 됐다. 씨름도 특별한 장비 없이 모래바닥에서 할 수 있지 않나. 궁도를 비롯해 찾아보면 그런 종목이 제법 있을 것 같다. 그런 종목을 잘 포장해서 세계 스포츠에 공헌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공단의 사업 가운데 하나다.

- 이사장 부임 이후 가장 잘했다고 느낀 일이 있다면.

지난달에 부탄에 자그마한 체육관을 지어줬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도움을 받는 것보다 도움을 주는 것이 그렇게 행복한지 몰랐다. 7억원 정도 예산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작은 체육관 하나를 지어도 30억원이 넘게 들어가니 큰 돈이라고 할 수는 없었는데 부탄에서는 ‘최대 규모, 최첨단, 최초’의 실내체육관이라고 하더라. 그동안은 땡볕에서 배구, 농구, 탁구 등 실내종목을 다 했는데 얼마나 좋아 하는지 깜짝 놀랐다. 부탄은 비자 수수료가 꽤 비싼 편인데 공단을 통해 오는 사람은 비자 수수료를 면제해주겠다고까지 하더라. 작은 도움으로도 국격이 이렇게 올라갈 수 있구나 싶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오히려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돌아왔다.

- 임기를 마치고 공단을 떠날 때 어떤 평가를 받고 싶나?

공단도 이제는 체육전문가가 맡을 시기가 왔구나 하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던 전문체육인이 와서 잘하고 갔다는 얘기를 들어야 후배들에게도 길이 열리지 않겠나. 과연 체육인이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사라지도록 열심히 하겠다. 잘 하려고 과욕을 부리기보다 실수 없이 마무리짓고 후배들에게 앞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실패는 할 수 있고 두려워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실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놓치는 것이다. 실수는 하면 안된다. 그래서 최근엔 술도 끊었다. 서울올림픽의 기적이 공단의 기적을 낳았고 공단의 기적이 평창의 기적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스포츠의 젖줄인 공단이 하는 일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한국 스포츠에 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공단 직원들의 사기도 올려주고 싶다.

jin@sportsseoul.com

◇ 조재기 이사장

▲출생년월일=1950년 3월17일

▲출생지=경남 하동

▲출신학교=대동고-경기대-동아대 체육학 석사-한양대 스포츠경영학 박사

▲경력=몬트리올 올림픽 남자유도 무제한급 동메달(1976)

체육훈장 거상장(1976)

동아대 체육과 강사, 교수(1978~2015)

부산시 체육회 사무처장(1997~1999)

대한체육회 이사(2002~2004)

체육훈장 맹호장(2003)

대한올림픽위원회 선수분과위원장(2005~2008)

대한체육회 사무총장(2008~2009)

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 회장(2008~2010)

대한카바디협회 회장(2009)

아시아카바디연맹 부회장(2014~)

제12대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20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