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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주사위는 던져졌다.
‘벤투 스타일’에 승부를 건다. 59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위한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의 선택이 끝났다. 그는 지난 9월 한국에 부임한 뒤 끝없이 추구했던 패스와 점유율 위주의 이른바 ‘후방 빌드업’을 더욱 강화했다. 아울러 파격 발탁을 가능한 줄이고 월드컵이나 올림픽, 아시안컵 등 메이저대회 출전 경험 많은 선수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벤투 감독은 “어떤 전술이나 포메이션 아래서도 우리 스타일을 유지하고 원칙을 보여주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벤투 감독은 20일 전훈지인 울산에서 내년 1월5일부터 2월1일까지 중동 UAE에서 열리는 2019년 아시안컵 최종엔트리 23명을 발표했다. 박주호와 문선민, 석현준 등 지난 9~11월 A매치에서 한 번이라도 골 맛을 봤던 선수들이 제외된 반면 김진수와 구자철, 지동원 등 경험은 갖췄으나 승선에 물음표가 달렸던 선수들이 UAE에 가게 됐다. 대표팀은 한·중·일에서 뛰는 선수들 위주로 23일 새벽에 출국해 UAE에서 훈련을 시작한다. 잉글랜드와 독일에서 뛰는 선수들은 26일 합류하며 손흥민 한 명만 오래 전 대한축구협회와 토트넘이 합의한 대로 내년 1월16일 중국과 조별리그 3차전 직전에 가세한다.
벤투 감독이 원하는 선수들이 누구인가가 23명을 보면 잘 드러난다. 그는 중앙수비수부터 패스 능력을 갖고 경기를 풀어나가 점유율을 높이고 공격 찬스를 높이는 ‘후방 빌드업’을 부임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선 굵은 축구에 맞는 선수들보다는 기술이 좋고 발 밑에서 다이나믹한 축구에 능통한 자원들을 뽑았다. 그는 이를 “우리의 철학과 원칙”이라고 표현한다. 이번엔 그런 경향이 더욱 강화됐다. 석현준과 문선민이 빠진 게 대표적이다. 190㎝의 장신인 석현준은 벤투 감독 부임 뒤 거의 유일하게 포스트플레이가 가능한 장신 공격수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지난 달 20일 우즈베키스탄과 평가전에선 A매치 복귀포를 쏘는 등 결과도 나름대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9월 A매치 소집 직후 당했던 발목 부상에서 돌아와 소속팀에서 복귀전을 막 끝낸 지동원을 뽑았다. 석현준이 공중전에는 강해도 유기적으로 공격을 풀어가는 능력이 좋은 지동원이 ‘벤투 스타일’에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벤투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9월에 두 경기를 뛴 지동원이 잘 했고 우리 플레이스타일에 더 잘 적응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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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러시아 월드컵 최종엔트리 전격 발탁 뒤 끝없는 상승세를 탄 문선민도 과감하게 빼버렸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그림 같은 왼발 발리골을 폭발했던터라 그의 제외는 다소 의외였다. 벤투 감독은 “문선민 같은 윙어(측면 공격수)들은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는가를 봤다. 또 좁은 공간에서 압박을 뚫고 해결하는 능력도 봤다”며 멀티플레이어 자질에서 문선민이 떨어져 동행하지 못했음을 설명했다. 이번 아시안컵에선 석현준의 높이, 문선민의 스피드 등 다른 옵션이 아예 삭제됐다.
최종엔트리의 또 다른 코드는 경험이다. 기성용과 함께 201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끌어온 미드필더 구자철을 뽑은 것이 대표적이다. 구자철은 러시아 월드컵 뒤 대표팀 은퇴 의사를 내비친 상태였다. 지난 9~10월 소집 땐 컨디션 난조와 부상 등을 이유로 대표팀에 빠지더니 11월 호주 원정 땐 호주전 전반 종료 직전 다쳐 교체아웃돼 이튿날 소속팀 아우크스부르크가 있는 독일로 돌아갔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선 지난 19일 시즌 2호골을 넣고 12㎞에 가깝게 뛰는 등 컨디션이 좋았다. 결국 벤투 감독은 대표팀에서 별다른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음에도 구자철이 뭔가를 보태줄 것으로 믿고 호출했다. 벤투 감독은 “구자철은 우리가 잘 아는 선수다. 그의 능력과 경험이 대표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지난 11일부터 시작된 국내파 위주 울산 전훈에서 여러 어린 선수들이 테스트를 받았으나 생존한 선수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 나상호 하나 뿐이란 것도 구자철의 발탁과 궤를 함께한다.
가장 경쟁이 심했던 레프트백에선 박주호가 탈락하고 홍철과 김진수가 낙점됐다. 김진수는 지난 3월 북아일랜드전 도중 부상을 당해 이후 A매치에 뛴 적이 없다. 벤투 감독은 울산 전훈에 그를 부른 뒤 지켜보고는 박주호 대신 김진수를 넣었다. 함께한 시간은 적지만 K리그 전북 경기 등을 통해 검증된 선수라는 이유다. 벤투 감독은 “홍철은 공격에 장점이 있고, 김진수는 수비가 좋다. 이미 관찰하고 있었던 선수”라고 했다. 결국 지난 10월16일 파나마전에서 뒤늦게 A매치 데뷔골을 쐈던 ‘나은이 아빠’ 박주호가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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