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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효원기자]‘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가 있다. 좋아하는 영화 베스트 5 안에 꼽아놓은 영화다.
영화는 주인공인 대학생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 분)가 마작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런 저런 심부름을 하는 츠네오에게 한 손님이 화장실에 갔다 올 동안 대신 마작을 쳐줄 것을 부탁한다. 츠네오는 화장실에 간 손님 대신 마작패를 받고 마작을 치기 시작했는데 대타로 앉은 자리에서 일생일대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패를 받고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국사무쌍’패다.
‘동남서북191919백발중+머리’. 츠네오는 시작하자마자 ‘국사무쌍’을 완성했다. 이처럼 시작하자마자 ‘국사무쌍’을 완성할 확률은 더더 낮다. 정동마작교실 교장선생님은 츠네오의 패에 대해 “국사무쌍 확률 0.043%×지화 확률 0.00158% = 0.00006794%”라고 분석했다. 포커 텍사스 홀덤에서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잡을 확률(0.000153907)의 절반 이하의 확률이라고 하니 ‘국사무쌍’이 얼마나 어려운지 어렴풋이 가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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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려운 ‘국사무쌍’만큼 어려운 것이 대학생 츠네오가 하반신 마비의 조제(이케와키 치즈루 분)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었으리라. 츠네오는 심야 시간에 할머니가 끌어주는 유모차에 숨어 몰래 산책을 하는 조제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조제네 아침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으면서 조제가 만든 계란말이에 반한다. 조제네 밥을 먹기 위해 조제네 집을 들락거리다 조제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대학생 여자친구가 있었던 츠네오는 여자친구를 버리고 조제네 집으로 들어간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생활하기 힘든 조제를 돌봐줘야 한다는 강렬한 연민 때문이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길지 않았다. 츠네오는 늘 등에 업고 다녀야 하는 조제가 힘겨워지기 시작했고 조제는 예민하게 이를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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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떠난 여행길에 들어간 물고기 모텔에서 조제는 이별을 결심한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조제네 집을 나온 츠네오는 옛 여자친구에게 돌아갔다. 옛 여자친구와 함께 길을 걸으며 통곡을 했고 그 눈물과 함께 조제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조제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식음을 전폐한 것이 아니라 씩씩하게 세상으로 걸어나갔다. 전동 휠체어를 두 다리 삼아.
어쩌면 세상 모든 연애는 ‘국사무쌍’만큼 어려운 확률을 뚫고 탄생한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 ‘국사무쌍’이 될 수도 있었던 인연들은, 그러나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조금씩 버려지다가 아무 것도 아닌 패가 되고 만다.
그러고 보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당시 연애하던 남자와 봤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호랑이같이 으르렁거렸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어울리는 연애였다. 호랑이에 방점이 찍혔다는 게 문제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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