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드라마

[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불륜 소재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접목한 드라마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KBS2 새 수목극 ‘바람피면 죽는다’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드라마는 오로지 사람을 죽이는 방법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범죄 소설가 아내와 ‘바람피면 죽는다’는 각서를 쓴 이혼 전문 변호사 남편의 코믹 미스터리 스릴러로, 제목대로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다. 추리극을 이끌어나가기 위한 장치로 불륜을 사용하며 무겁게 다가올 수 있는 소재를 가볍게 풀어냈고 조여정과 고준의 색다른 매력이 입소문을 타며 방영 첫 주만에 시청률 6%대를 넘어섰다. 한동안 극심한 흥행 침체기를 겪었던 KBS로서도 반가운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TV조선 주말극 ‘복수해라’는 아예 제목부터 ‘복수’를 내걸었다. 잘나가는 인플루언서 강해라(김사랑 분)는 불륜 스캔들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지만, 뒤늦게 남편 이훈석(정욱 분)의 계략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고 리포터였던 이력을 활용해 복수에 나서는 내용이다. ‘복수해라’는 시작과 동시에 통쾌한 복수가 연이어 터지며 시청률 3%대를 지키고 있다.

정점을 찍은 건 SBS 월화극 ‘펜트하우스’다. 매회 휘몰아치는 전개로 화제의 중심에 선 ‘펜트하우스’는 막장 전개라는 비난 여론에도 방송 2회 만에 시청률 두 자릿수 돌파한 데 이어, 마의 20% 벽까지 무너뜨리며 시청률은 고공행진 중이다. ‘펜트하우스’는 오윤희(유진 분)와 천서진(김소연 분) 간 오랜 악연에서 비롯한 복수를 큰 골조로 하면서도 헤라팰리스 사람들의 공조와 견제, 배신 등을 그리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여기에 ‘막장의 대모’로 불리는 김순옥 작가의 필력이 더해지며 탄력을 받았고, SBS는 기세를 몰아 시즌2와 3도 제작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월화, 수목극부터 주말극까지 안방극장을 불륜 드라마가 장악하고 있다. 불륜 소재는 전통적으로 한국 드라마에서 가장 인기있는 흥행 공식 중 하나로 꼽혀왔다. ‘아내의 유혹’, JTBC ‘밀회’, ‘아내의 자격’, SBS ‘VIP’, JTBC ‘부부의 세계’ 등처럼 소재가 같아도 이를 개연성 있게 얼마나 잘 꾸려 가는가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욕하면서 본다’는 이른바 막장드라마가 혹평에도 꾸준히 인기를 얻는 이유다.

한 드라마 PD는 “중요한 건 결국 이야기를 그려내는 방식이다. 막장 드라마라도 인물의 개연성, 구성적 완성도를 높이면 작품으로서 가치는 있다”며 “‘부부의 세계’는 ‘불륜’이라는 관계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에 집중해 공감을 이끌어냈고, ‘펜트하우스’는 스피디한 전개와 개성있는 캐릭터들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불륜 드라마는 명백한 악역을 통해 시청자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며 “불륜극에서 필수적인 악역은 한 주인공보다도 더 주인공같은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해 배우들에게 있어서도 잘만 소화하면 큰 화제를 모을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불륜극이 ‘화제성’에 치우치는 상황이 이어져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펜트하우스’도 흥행과 별개로 선정성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학교 폭력 장면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100건 넘는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불륜의 코드가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와 연결되며 과거에 비해 복합적인 장르적 성격으로 발전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어느새 강한 자극에 길들어진 시청자들에게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불륜 소재가 드라마의 다양성을 헤칠까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라며 당장은 높은 시청률로 시청자들을 붙잡아 둘 수 있을지 몰라도 OTT 등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는 결국 TV 드라마 시장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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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SBS, KBS2, TV조선